2010. 9.21.불날. 늦더위

조회 수 995 추천 수 0 2010.10.05 00:28:00

2010. 9.21.불날. 늦더위


서울은 구멍이 뚫렸다는데,
여기는 하늘 멀쩡하였습니다.
더구나 막 더위가 한낮 기승이었지요.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 풀을 벴습니다.
추석맞이 부역이었지요.
물꼬는 방아를 찧었습니다.
햅쌀이 아직 나오진 않았으나
묵은 거라도 새로 내서 먹자 했지요.
기락샘이며 부엌 화덕 위의 환풍기 2차 청소도 있었습니다.
그런 일에는 정말 남자 손이 필요하다 싶지요.
“이게 원래 이런 색깔이었어?”
훤해졌답니다.

추석장을 보러 나갔습니다.
으악!
말로만 듣던 그 치솟은 물가입니다.
“시금치 없는 잡채는 내 생애 또 첨이네.”
시금치 한 단 값을 보고
사람들이 쥐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잡채야 묵은 김치로도 콩나물로도 맛나지요.
하지만 명절 잡채는 색색가지 채소와 곁들여져야 제 맛이지 않던가요.
시금치가 빠진 나물은 또 어떠려나요.
아무래도 장을 덜 보게 됩디다.
우리 밭의 부추랑 고구마줄기며들이 어찌나 고맙던지요.

명절 음식들을 합니다.
지난 설부터 고구마부침은 기락샘과 류옥하다가 맡았습니다.
다른 식구들은 다른 부침을 부치고
나물을 하고 생선을 굽고 고기를 쟀습니다.
다른 해보다 단촐한 음식들이었지요.
송편도 빠졌습니다.
대신 얼려두었던 떡들이 나왔지요.
물가를 처음으로 실감하였더라니까요.

이런 날이면 사람들이 마음 쓰입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의 명절은,
고향을 떠나있는 이들의 명절은 어쩔까 싶어.
그래서도 물꼬의 명절을 지킵니다.
불쑥 걸음이 닿는 이들도 있지요.

사람들에게 두루 ‘한가위 절’을 올렸습니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시인이 노래하던 한가위 보름달입니다.
            멀리 남도의 노사부님이 
            손수 나무를 깎아 보내주신 집지킴이로
            물꼬의 한가위를 더욱 밝혀주셨습니다.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지요.
            학년 주기를 갖고 살다보면
            이 맘 때가 꼭 한 해 절반입니다.
            잠시 돌아보고, 다시 걸어가라지요.
            사는 곳이 집이고, 뿌리내린 곳이 고향이라지 않던가요.
            긴 연휴 어디에서든 마음 뉘었다
            다시 옹골지게 걸음 떼셔요.
            명절 잘 쇠시옵길.
            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2010년 한가위, 물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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