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26.해날. 흐릿해지는 하늘
흐릿해지는 오후였으나
둥실 달 밝습니다.
밑반찬들을 챙겨 기락샘 서울 올려 보내고,
두면 일이겠는 몇 가지 재봉질 일들을 하는 해날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청소년 여자 월드컵 결승전이 있었고,
소사아저씨방에 죄 모여 응원을 했더랍니다.
간밤 늦도록 일한 식구들은 잠을 좀 더 챙겼구요.
간장집 앞, 올 마지막 열무를 뽑았습니다.
벌레랑 잘 나눠먹는 구멍 송송한 열무입니다.
마침 풋김치도 없는 데다,
밭에 다른 것들 갈 때도 되어
아직 여리나 뽑았습니다.
그래도 한가득 부엌 바닥에 쌓였지요.
다듬어 김치를 담았더랍니다.
저녁에서야 대해리를 나섰습니다.
경주를 다녀 온다 잡은 날이지요.
그곳의 한 공동체와 지난 여름 어느 연수를 통해 연을 맺고
좋은 생각을 나누고 있습니다.
산촌유학을 하는 곳이며
나아가 대안학교를 준비하고 있지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라디오에서 라졸 캄자도프의 ‘사랑노래’ 하나 흘렀습니다.
캄자도프라는 러시아 시인에 대해 겨우 그거 하나 아네요.
‘만약 그대를 천 명의 사나이가 사랑한다면
그렇다면, 그 천 명 중에는 나,
라졸도 끼어 있을 꺼요.’
로 시작하고 있지요.
만약 백 명의 남자가 그대를 사랑한다면
그 백 명 중 내가 있을 것이며,
열 명의 남자가 그대를 사랑한다면
그 열 명 중 하나는 나일 것이고,
그대를 사랑하는 남자가 단 한명 뿐이라면
그가 나라는 걸 그대는 알게 될 것이고,
그러나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면
그때는 이미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잔잔히 읽어주니
눈에 신파조였던 글이 아름다운 시가 되데요.
어느 때 듣느냐에 따라 또 다를 테지요.
달려가고 있는 길 앞으로 저 멀리 저녁 하늘가
목성이 밝게 비추었습니다.
온 하늘엔 달빛 차고
사람의 마을에는 안개가 찬 밤,
여기는 경주 도리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