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 3.해날. 흐리다 밤 비
입춘첩을 뗍니다.
봄이 갔습니다.
여름을 넘기며 들이친 비로 풀을 쒀서 붙인 한지는
곰팡이가 점점이 유리창 위에 자리를 틀고 있었지요.
그리고 가을을 건너갑니다.
아이가 썼던 붓글은
더 힘있게 새 봄의 입춘첩에 그려질 테지요.
식구 하나는 책방 책꽂이를 정리하며 보내고,
목수샘은 된장집 보일러 펌프를 교환하고
샤워실 망가진 수도꼭지를 교체합니다.
“행주걸이도...”
가마솥방 싱크대 위엔 창문 앞에 행주걸이가
맞춤하게 두 줄 있었더랬습니다.
거기 삶아 걸어둔 행주가 볕을 받고 있을 때면
사람들은 그 풍경을 사랑스럽다 했습니다.
그런데 공사를 할 때 빼놓은 것을
여태 달지 못하고 있었더랬지요.
드디어 오늘 그것도 매달았네요.
마을이 술렁였습니다.
온갖 노래가 흐르고
마을 사람들이 다 나갔지요.
읍내에 큰 마트 하나 생기나 봅니다.
그곳에서 왔다며 밀가루를 나눠준다 했지요.
솔깃해진 아이가 더 신나서 좇아나갔습니다.
“물건을 팔기도 하고, 홍보도 해요.
집집마다 한 사람씩 다 나오래요.”
그러며 물꼬는 몇 가정이 사는 곳이니
다 나가서 하나씩 받아오라 채근합니다.
산골 고즈넉한 마을, 이런 게 또 재미였더랍니다.
아이가 교무실로 들어와 넌지시 말합니다.
“엄마, 사람들을 부를 때...”
아무리 엄마 제자여도 어른의 이름을 그냥 부르면
그 사람들이 여전히 제 앞에서는 아이가 되니
꼭 샘이라 붙여 “누구샘” 하고 부르랍니다.
그래야 홀로 어른으로 잘 설 수 있단 말이지요.
네, 때로 ‘불림’은 중요합니다.
제 은사님의 시어머니, 제가 할머니라 부르는 당신은
통화할 때면 꼭 ‘옥교장’ 하고 부르십니다.
상대의 격을 높여주시는 거지요.
그러면 그 격에 자신을 맞춰얄 것 같아진단 말이지요.
일리가 있겠다 싶습디다.
갈수록 아이에게 삶의 지혜를 더 많이 빚집니다.
어느날엔 그의 직함을 꼬리에 달아 부르는 날도 오겠지요.
그러다 ‘아범!’ 할 때도 올 테구요.
식구들이 모두 함께 영화 한 편 보기로 한 날입니다.
르네 끌레망의 고전 <금지된 장난>(1952).
소녀 폴렛과 소년 미셀이 얼마나 깜찍했던 영화인가요.
전쟁은 참혹해도 삶은 계속되고 아이들은 자라지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서 파리에서 피난을 가던 폴렛은
부모를 일순간 잃고 서너 살 더 먹음직한 미셀네 농가에 머물게 됩니다.
폴렛은 죽은 강아지를 묻으며
죽은 것은 땅에 묻고 무덤에는 십자가를 꽂는다는 걸 미셀로부터 알게 되지요.
온갖 죽은 것들을 끌어다 묻으며 십자가는 더 많이 필요하게 되고,
마침 그 십자가는 교회 제단에도 사람들의 무덤에도 있습니다.
엄청난 죽음들이 스러지는 전세계의 화염에도
아이들은 또 저들의 세계를 만들고 있지요.
삶이 그렇습니다,
엄청난 일이 우리를 스쳐갈 때도
여전히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그렇게 살아가지요,
무심하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