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 4.달날. 흐리다 아주 가끔 햇줄기, 그리고 부슬비


바람 많은 아침이었습니다.
식구들이 황토방에 하나둘 모여들었지요.
10월 첫 아침수행을 시작합니다.

날이 맑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흐리다고도 못하겠습니다.
가끔 햇줄기 내리기도 하고,
그러다 오후 한가운데선 부슬비 내리데요.

오전에 식구들이 모두 논에 있었습니다.
올해는 모내기 전 로터리를 칠 적 논바닥을 잘 고르지 못해
잡초를 잡아낼 우렁이가 살기에
그 환경이 적합치 않았습니다.
그래 더러 더러 피가 오르고
지금은 고마리도 예 제 웃자라 있었지요.
키가 아주 자란 털진득찰도 벼들 너머로 한껏 삐죽거렸습니다.
머잖아 벼를 베자면
미리 이것들을 다 잡아내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네 다랑이는 그리 많은 범위가 아니어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지만
마지막 한 다랑이는 꼴이 말이 아니었지요.
마을 들머리에 있는 논들이라
남 보기 영 민망하단 게 여러 날의 인사였더랬답니다.
여럿 붙으니 금새 다른 다랑이는 끝났으나 문제의 다랑이,
며칠 전 물을 빼고도 아직 마르지 않고 있어
역시 오늘도 미루었네요, 자꾸 어딘가 물이 스미는데
좀 두고 보자 했습니다.

“이 논에는 메뚜기가 다 있다면서?”
우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메뚜기가 뛰논다는 물꼬 논이지요.
논에 들었을 적
얼마 전 청송네로 서울서 돌아온 아주머니 둑에 오셨습니다.
아저씨가 몇 날 며칠 단식을 한 끝에
오지 않겠다는 아줌마를 끌고 내려와 시골살이를 시작한 어른들이지요.
“그래도 오시니 좋지요?”
“아유, 나는 아직도 싫어.
그래도 나 죽은 후에 갈 거냐, 그래서 왔지.
안 그럼 어떡해.”
곧 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옛집을 헐고 새로 짓는다시지요.
여기 시집와 열 몇 해 농사 짓다 나가셨던 당신은
옛적 메뚜기를 맛나게 볶아먹었답니다.
한 마리씩 어찌나 잘도 낚아채시던지요.
그걸 차곡차곡 주머니에 넣고 계시데요.

“5년 만에 젤 잘 됐어.”
풀은 많은데 나락은 또 어느 때보다 굵습니다.
“학교 게 마을에서 젤 잘 됐어.”
어르신들 죄 한 마디씩 칭찬이시지요.
무엇보다 땅심이 살아 있어 그렇지 않나 짐작합니다.
(한편, 약 안치고 이만하면 잘 됐다, 신기도 하네,
그런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사람 손을 들이지 못했는데도
그토록 힘있게 솟아오른 그들입니다.
논을 부치는 다섯 해동안 농약이라고는 한번도 치지 않았으니
이제 제 힘으로 그리 살아내는 게지요.
유기농의 힘이 그것 아니던가요.
자연의 힘 말입니다.

지나던 신자네 아줌마도
마침 아저씨 살아생전 사두었던 헌 집 한 채로 애먹으며
의논을 좀 해오셨습니다.
“안 보이시더만...”
“대전에...”
“학교 안에 있으면 오시는 줄도 가시는 줄도 모른다니까.”
대전 자식네 나가 있다더니 언제 들어오셨나 봅니다.
내년엔 같이 버섯 따러 다니자고 약조도 했지요.
마을에 나가 있으면 이런 게 또 좋습니다.
지난 4년, 멀지 않은 곳으로 강의를 들으러도 가고
좀 먼 곳으로 강의를 하러도 가고
자주 밖으로 돌았던 지라
마을 어르신들 하고 자주 뵙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2월이면 경로당에서 놀기도 하였는데,
그것도 지난 2월은 거의 걸음 하지 못하고 지나갔더랬지요.
이번 학기가 마지막,
주로 산마을 안에 있을 내년 학기들에 대한 기대로
마음은 한껏 가을하늘이랍니다.

“누구라?”
“교장아이가?”
“아이구, 우리 학교 가는데...”
세 할머니가 동시에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래요, 가셔요. 술 한 잔들 하시지 뭐.”
“뭘 일하다 간대, 마저 햐.”
“마침 나갈려고 했어요.”
몸이 안 좋아 자식한테 가있던 송희네 할머니도 돌아오셨고
이제는 일이 좀 줄어든 재국이아저씨네 할머니도 오셨고
그리고 앞집 이모할머니도 같이들 오셨습니다.
두어 가지 나물을 내고
후다닥 전을 붙여내고
그리고 찌개를 하나 끓여냅니다.
어찌나 맛나게들 드시는지,
마음 어찌나 좋던지요.
마을 밖을 나갈 일이 줄어드는 다음 학기이면
이렇게 자주 자리 앉게 되겠지요.
당신들께 남아있는 날들이 아무렴 살아오신 날보다 많을는가요.
“하이고, 옛날에는 갸름하더니, 아주 둥그래졌네.”
류옥하다 선수를 못 알아보겠다십니다.
당신들은 우리 아이를 키우는 마을 구성원이기도 하시지요.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다 필요하니 말입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이 산골 아이를 키워도 주셨답니다.

식구들 한데모임이 저녁에 있었습니다.
집지으러 영덕에 나갔다 돌아온 종대샘,
내 맘이 무슨 일을 하건 어디에 있건 편해야 한다,
요즘 그런 생각 많았더라지요.
물꼬에 돌아와 더욱 좋다했습니다.
식구들 일나눔 뒤 NVC(비폭력대화) 모델의 4단계를
오랜만에 공부거리로 삼았더랍니다.

1.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행동을 ‘관찰’한다.
2. 관찰한 바에 대한 우리의 느낌을 ‘표현’한다.
3. 그러한 느낌이 들게 하는 ‘욕구, 가치관, 소망사항’을 찾아낸다.
4.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한다.

첫째, 어떤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관찰합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내가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여부를 떠나, 판단이나 평가를 내리지 않으면서 관찰한 바를 명확하게 그대로 말하는 것이지요.
다음은 느낌, 그 행동을 보았을 때 어떻게 느끼는가를 말합니다. 아픔, 무서움, 기쁨, 즐거움, 짜증 등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신이 포착한 느낌이 내면의 어떤 욕구와 연결되는지를 말합니다.
네 번째,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책의 예를 봅니다.
“펠릭스야, 더러운 양말 두 짝이 똘똘 말려서 탁자 밑에 있고, 또 세 짝이 TV 옆에 있는 걸 보면 엄마는 짜증이 난다. 여럿이 함께 쓰는 방은 좀더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는 것이 나는 좋거든.”
그리고 구체적 부탁하지요.
“네 양말 뭉치는 네 방에 놓든지, 세탁기에 넣어놓을 수 있겠니?”
우리들의 대화가 보다 비폭력적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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