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몽당계자 이튿날, 2010.10.23.흙날. 맑음

조회 수 1179 추천 수 0 2010.11.06 12:04:00

가을 몽당계자 이튿날, 2010.10.23.흙날. 맑음


한밤중 몰래 다녀간 비입니다.
촉촉한 대지 위로 아무일 없은 양 해 떠올랐습니다.
창고동에서 아침수행을 합니다.
준성이가 젤 먼저 일어났네요.
몸이 무거워 보입니다.
이번에 온 아이들 가운데 막둥이이지요.
마음 더욱 쓰입니다.
늦게 잤으니 다들 곤하지요.
그런데 몸을 움직이며 개운하다고들 합니다.

아침으로 콩나물국밥을 준비합니다.
예지샘이 노래를 부르던 물꼬국밥입니다.
인경샘이 그랬던가요,
“선생님, 집 밥 먹고 싶어요.”
늘 학교식당이나 기숙사에 장기간 밥을 먹으면
그런 생각 참 간절하지요.
그 ‘집 밥’입니다.
언제 먹어도 참 맛난 식단입니다.
역시 신정원엄마가 같이 준비를 해주십니다.
워낙 몸이 허한 분이신데,
쉬었다 가실 수 있도록도 하고프건만
바쁜 일손으로 자꾸 부엌에 붙게 하고 있습니다요.
여기 삶이 그렇답니다.

“아무도 보글보글 얘기를 안 하네.”
그러게요, 아이들이 오는 첫날 서로 속틀을 의논하다보면
꼭 나오는 것이 보글보글 시간입니다.
저들끼리 요리를 해서 한 끼를 먹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 그건 어른들한테 참 일입니다.
부엌에서 집약적으로 하는 게 낫지
일일이 각 요리마다 자재들이 나오려면
어른들한테는 좀 번거롭지요.
“히히, 그래서 모른 척했지.”
그런데 저들도 그리 아쉬울 게 없다는 표정들입니다.
워낙 왔던 아이들이니까요.
그래서 ‘계자 경험이 있는 아이들 가운데’ 몽당계자를 오라 하지요.
2박 3일이 워낙 짧은 날이어
제대로 누리고 갈래도 왔던 아이들이 낫고,
보글보글 아니어도 할 것들 무지 무지 많으니까요.

“오전에는 감을 따자.”
어른 두엇은 나무에 오른 아이들을 돌보고
나머지 어른들은 평상에 앉아 아이들이 따온 감을 깎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감꼭지,
해본 적 없거나, 그만 잊었겠지요.
곶감용으로 매달기 좋게 꼭지를 남기지 못하고
아주 잘라버린 꼭지가 여럿입니다.
하기야 그건 그것대로, 좀 많은 양이긴 하지만,
툭툭 썰어 그냥 말리면
오며가며 좋은 주전부리가 될 테지요.

점심을 준비하러 막 들어왔는데,
예지샘이 외치며 들어옵니다.
“옥샘, 현진이가 다쳤어요!”
아찔해집니다.
아고, 저 몰골 좀 보셔요.
아이를 먼저 앉히고 먼저 머리며 목이며 팔다리를 일일이 만지니 괜찮다데요.
교무실로 얼른 달려가 약상자를 들고 옵니다.
얼굴, 눈꺼풀 위 아래 상처가 큽니다.
아, 늘 기적이 함께 하는 이곳입니다.
나뭇가지가 용케 눈을 피했습니다.
그 고운 얼굴에 그만 생채기를 냈으나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댁에 전화 넣으려다 맙니다.
걱정만 일지,
멀리 있는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고대로 앞으로 퍽 넘어졌다는데,
어쩜 저리 멀쩡한지요.
그래도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약을 바르고 잠시 앉았더니
고새 또 나가고 없는 현진이네요.

점심을 먹고 드디어 결전(?)의 시간입니다.
연탄이 들어왔지요.
올해는 한번에 3,000장이 다 들어왔습니다.
절반은 날망(된장집)에 올릴 거고,
나머지는 큰해우소 뒤란에 수월하게 들어갈 것입니다.
오전에 소사아저씨는 큰해우소 뒤와 된장집 옆 창고를
죄 정리해두었습니다.
낮버스로 군복무중인
시광샘과 성수샘이 휴가를 받아 달려도 왔지요.
예지샘, 휘령샘, 인경샘의 친구들입니다.
연탄나르기를 주목적으로 한 투입(?)이려나요.
“준성아, 괜찮겠니?”
아무래도 감기로 몸이 힘든 준성이가 괜찮을까 걱정이었습니다.
같이 하고 싶다했지요.
나중에 류옥하다는 열심히 하는 준성이가
참 대견하고 기특하다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 여덟에 어른 열, 그리고 연탄배달 아저씨까지
스물이 붙었습니다.
해마다 하는 물꼬 월동준비에서 최고의 순간이지요.
그 사이 잠시 등을 붙이시고 나온 신정원엄마가
마당 한가운데 나란히 셋 붙인 평상에서 감을 썰고,
부엌에선 참을 준비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거기 힘에 겨우나 평화가 함께 하고 있었지요.

“안 힘든 갑지?”
연탄 나르는 줄에서 콘서트가 다 있었더랍니다.
성재가 압권이었지요.
판을 만들어만 주면 제 흥이 넘치는 아이입니다.
젊은 샘들의 노래 이어달리기는
나이든 이 마을을 다 환하게 하였지요.
노래가 날아든 가마솥방도 다 흥겨웠더랍니다.
시간이 흐르며 몸도 무겁고
그러면 노래도 줄어들련만
아무래도 힘 좋은 어른들이 함께 하니
작년보다는 수월했던 모양입니다.
끝까지 말소리가 줄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장갑을 벗고 손을 터는 아이들에게 물으니
역시나 사람이 많아 덜 힘들었다지요.
모다 애썼습니다.
모다 고맙습니다.

참으로 핫케Ÿ잌??구웠습니다.
서초동 현진이네서 온 유기농식품이랍니다.
거기 류옥하다가 한철 내내 머슴살이를 갔던 농장에서 받은 세경(?),
유기농 사과로 만든 잼을 얹었지요.
그런데 다들 일을 마저 끝낸다지요.
저녁 밥에 후식으로 내야지 하고 한켠으로 밀어두었더랍니다.

저녁에는 구운 고기가 나옵니다.
마당에서 화롯불 피는 소사아저씨를 말렸지요.
으윽, 그거 너무 번거롭습니다.
그릇 다 내가고 음식 다 내가고...
웬 고기인가 싶겠지요.
휴가 나온 군인들이 먹고 싶다고 사온 것입니다.
온 식구들이 다 먹을 만치 들여왔습니다, 야채까지.
물꼬에선 곡주를 냈지요.
아이들이
고기 구경을 해서도 몽당계자를 사랑한다는 소문이 있었지요.

달골을 걸어 오릅니다.
저녁답에 날이 흐려져 달은 사라졌으나
하늘빛은 훤하였습니다.
목수샘이 난로에 불을 지폈고,
아이고, 우리 거 캐서 구우려던 고구마는
아주 멀리 달아난 꿈이네요.
춤명상을 하고
야참이 차려졌습니다.
어제는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 골뱅이소면에
유기농사과와 한살림오징어와 몇 가지 주전부리,
오늘은 역시 아이들이 애원한 두부김치와
나머지는 어제와 같았더랍니다.
얼큰해진 어른들이 자주 아이들을 방해했지만
아이들은 곧 저들의 세계에서
열심히 ‘실타래’를 풀었지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나가고 싶은가,
어떤 준비들을 할 것인가,
당장 중학교에선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지요.
몸이 가라앉았던 준성이는
잠시 곁에서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처음 물꼬를 방문한 시광샘과 성수샘은
아이들의 대화에 어느 순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물꼬라는 판에 대해 생각했더라나요.
아이들이 저런 진지한 대화를 이어갈 줄 몰랐다고들 했습니다.

아, 안타깝게도 오카리나 연주를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친 산이, 들이
모다 연주였더랍니다.

늦도록 젊은 샘들은 창고동에서 도란거렸고,
물꼬의 밤은 잘도 흘렀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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