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1.달날. 맑음 / 가을 단식 이레 중 첫날

조회 수 974 추천 수 0 2010.11.16 17:29:00

2010.11. 1.달날. 맑음 / 가을 단식 이레 중 첫날


가을 단식 이레 가운데 첫날입니다.
단식을 하는 첫째 까닭은 비워내고자 함이며
그것과 더불어 성찰에 가장 큰 이유가 있겠습니다.
내가 무얼 먹고 살았는가,
무엇을 입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나,
찬찬히 돌아보는 거지요.
그리고 비어있는 현재에 집중합니다.

이번 단식에선 처음으로 아이도 함께 합니다.
수년을 어른들이 하는 단식과정을 바라만 보며
언젠가 단식을 해보겠다고 벼르고 있던 아이입니다.
공동체 식구들은 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습니다.
한편 멀리서 짧은 단식을 같은 시기에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네들은 메일을 통해,
물론 긴급한 일이 벌어질 땐 전화로,
안내에 따라 단식을 진행합니다.

아침 수행 대신 마을을 돕니다.
단식을 하는 동안 날마다 5km는 걸으려 합니다.
대전에서 건너와 이 마을에 있는 밭을 빌려
양배추를 대량으로 기른 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양배추들이 밭에서 띄엄띄엄 널부러 있은 지 오래입니다.
마을 어르신들께 여쭈니 아예 버려진 듯하답니다.
먹을 만한 것들이 제법 있는데,
시장에 나온 양배추는 비싸서 사먹을 엄두도 안 나는데,
정작 생산지에선 이 지경입니다.
마침 밭을 빌려주고 있는 주인 아주머니네를 만납니다.
“갖고 가. 그거 두어 개 먹으라고 못할까.”
그 말 이고 얼른 두 개 뽑아왔지요.
샐러드도 하고 쪄서 쌈도 싸먹고 두부랑 타이요리도 해서 먹었습니다.

요새 오마이뉴스에 한 주 한 차례 글을 올리고 있는 류옥하다한테
SBS에서 다시 연락이 옵니다.
산골에서 학교에 가지 않고 농사일 거들며 사는 아이,
이웃마을에 머슴을 살러도 가는 그 아이 이야기를
방송에 담아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자기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것과 귀찮음 사이에서
지금 고민 중인 듯합니다.
물꼬를 취재하는 것은 아니니 물꼬의 고민은 아닌지라
그 아이의 결정을 바라보고 있지요.

이른 겨울이 모진 이 산골의 11월,
빈들모임을 어쩔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슬쩍 그냥 넘어갈까 하는 마음도 일던 참이지요.
그런데 그 미적거림 어이 알았는지,
진학시험을 끝낸 새끼일꾼들이 오고 싶다 연락 왔습니다.
시험에 애썼던 마음들 부려놓고 잘 쉬다 가라고
당장 11월 빈들모임 공지를 올렸지요.

아이랑 단식보조요법들을 합니다.
뒤통수냉각법을 하고 붕어운동, 합장합척운동, 모관운동을 나누었지요.
아이가 자라
이제 도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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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달날.추움. <시간>

아휴~ 시간은 너무나도 잘 간다. 이제 2010년이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10달이 지나버렸다.
이렇게 2011년이 오고가고, 나도 어른이 되고 늙어서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보람차게 보낸 것이다.
도대체 인생이 뭐길래......

단식 첫날(몸무게: 61kg)
단식 1일째인데 넘 힘들다.
엄마가 단식 첫날에는 무염일, 즉 소금을 먹지 말라고 해서 너무 아쉬웠다. 소금을 먹으면 그나마 기운이 좀 날 텐데…….
오늘(감식 첫날) 점심때까지는 배고픔이 덜 하였으나, 오후에 청소를 하면서부터 엄청난 배고픔이 느껴졌다.
우리 집은 무지무지 넓다. 옛날 폐교를 임대하여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주하는 식구는 나와 엄마와 몇몇 사람들뿐인데, 하필 이날은 우리밖에 없어서 내가 드넓은 본관을 다 청소해야 했다.
너무 피곤하고, 배고팠지만, 그래도 열심히 청소를 했는데 엄마가 내가 귀찮아하는 걸 알았는지, 일을 멈추고, 나를 도와서 청소를 해 주었다. 엄마가 도와줘서 청소가 쉽고 재밌게 끝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청소를 하는데 쓰러질 것 같고,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저녁에 구석에 찌개를 보는데 거기 있는 볶은 김치가 너무나 맛있어보였다. 아, 그 김치의 짠 맛과, 고추장의 달콤함이 그리운 것이 처음이었다.
내 생각에 단식을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먹을 걸 귀하게 여기고,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하는 역할인 것 같다.

(열세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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