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4.나무날. 맑음 / 가을 단식 나흘째

조회 수 996 추천 수 0 2010.11.16 17:31:00

2010.11. 4.나무날. 맑음 / 가을 단식 나흘째


먼 산, 물 찬란히 들었습니다.

아이도 이번 가을 단식에서
처음으로 단식을 시도했습니다.
예정했던 사흘을 마치고 오늘 미음을 먹기 시작했지요.
워낙에 먹는 걸 좋아하는 아이여
정작 먹지 않는 시기보다 곡기가 들어가는 보식 기간이 걱정이더니
안내 따라 잘 따라하고 있답니다.
기특합니다.
그런 힘도 단식을 통해 나온 게 아닐까 싶데요.

모과차를 만들었습니다.
앞마을에 있는 모과 두 그루는 언제나 물꼬 차지입니다.
미음을 먹고 기운을 좀 차린 아이가 칼질을 했습니다.
설탕에 잘 버물려 유리병에 넣었지요.
긴긴 이곳의 겨울날,
찾아든 이들과 끓여 두루 나눠 마실 것들이랍니다.
곡기가 들어간 아이는 아주 신이 났습니다.
굵어보니 먹는 것의 고마움과 감사함이 크게 살아났나 봅니다.
마늘도 반 접 꺼내와 다 까고 찧고 있데요.

마을을 한 바퀴 돕니다.
걷기운동이지요.
수달이아저씨네도 갑니다.
다리를 잘라낸 뒤 목발에 의지하는 아저씨는
그저 마당을 오르내리는 것이 바깥으로 나가는 전부이십니다.
몇 해 아주머니가 경운기를 몰며 이럭저럭 농사를 이어왔지요.
스물둘에 읍내서 이 산골로 시집와
이적지 세 아이들 키운 것 말고 없다셨는데,
아무것도 없는 집에 와 그 고된 삶을 사셨다는데도
어쩜 저 아름다운 얼굴을 잃지 않으셨는지,
아주머니랑 마주 앉아있으면 늘 마음이 절로 따뜻해집니다.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
삶에 그런 욕심 내봅니다.
그 댁에 마침 묵혀놓은 밭 있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겠다 준비하는 우리 목수샘이 빌리기로 하였습니다.

새금강비료에서 안부 인사가 왔습니다.
2004학년도엔 그곳에서 나눠준 유기질퇴비로
포도밭 농사를 지었더랬습니다.
한 방송국의 다큐멘터리에 물꼬 삶이 소개된 뒤였더랬지요.
고마운 인연들입니다.
잊지 않았으나 인사 한번을 드리지 못했네요.
사는 게 어째 이리 늘 서툴기만 할까요.
물꼬에 손발 보태는 모든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 또 일었더랍니다...
힘내며 열심히 이곳을 꾸리겠습니다.
하늘처럼 아이들 섬기고 또 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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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4.나무날.맑음. <보식 첫날>


보식(복식, 회복식) 첫날(몸무게: 59kg).
오늘 일어나보니 아침에 배가 말랑말랑했다. 보통 때는 배가 불러서 배를 눌러도 배가 안 들어갔는데, 지금은 배를 누르니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몸무게를 쟀는데, 살이 3킬로그램 가까이 빠져서 놀랐다. 이렇게 많이 빠진 것은 아팠을 때 5일 만에 5킬로그램이 빠진 이후 처음이다. 너무 기쁘다.
처음에 감식할 때나 단식 초기에는 뭔가 토할 것 같고 너무나 배고팠지만, 아침에 딱 보니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뱃속에 아무것도 없는 시원함과 공기를 들이마시면 바로 항문으로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워지면서 앞 가죽과 등가죽이 붙고 그런 만큼 의식이 맑아지면서...”
어머니는 그래서 단식을 하신다는데, 나는 솔직히 그런 것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침에 사흘 만에 처음으로 음식(미음)을 먹었는데, 그 조금으로 배고픔이 사라지고 막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점심 때 너무 맛있어서 미음을 빨리 먹었는데, 엄마가 한 말씀을 하셨다. 너는 밥을 먹을 때 너무 빨리 먹어서 살이 찌는 것이다, 천천히 먹으면 위가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너무 빨리 먹으면 위가 놀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좀 있다가 사과즙을 먹었는데, 너무나 달콤했다. 이 음식을 아끼는 느낌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흘을 단식해도 배가 고파 죽으려 그러는데, 가뜩이나 몸이 약한 엄마가 버틸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었다. 보면 엄마는 단식 할 때 통증이 오면(나는 3일만 해서 이런 경험이 아직 없다.) 힘들다며 막 짜증을 낸다. 그래도 단식이 좋으니 하는 것 같다.
저녁때 우리 식구들이 된장국을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 왈, 아직 된장국도 먹지 말라는 것이다. 된장은 수프 수준인데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배가 부르니 너무나 좋다. 이제 곧 밥도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흐흐흐, 더 더 좋다.

(열세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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