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6.흙날. 맑음 / 가을 단식 엿새째

조회 수 1347 추천 수 0 2010.11.16 17:32:00

2010.11. 6.흙날. 맑음 / 가을 단식 엿새째


쉼터 포도밭에 마지막 가지치기를 하였답니다.
달골도 아래도 포도나무 겨울날 준비는 다 된 게지요.
이제 학교 마당 낙엽들을 긁어모아
퇴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단식 나흘째를 넘기며
몸에서 좋지 않았던 부위에 엄청난 통증이 휩쓸고 가자
오늘은 몸이 한결 가뿐해졌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게지요.
좀 살 것 같은 단식 엿새째 아침이었더랍니다.
하지만 따뜻한 방에서
몸을 조금 더 편하게 하고 오전을 보냈습니다.
뒹굴거리며 영화도 한 편 보았지요.
아이가 홀로 자기의 된장죽을 끓여먹었습니다.
두부까지 으깨 넣었더라나요.

아보카도라는 과일이 있습니다.
토마토처럼 채소로 분류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요.
밭에서 나는 버터라고 하지요.
제가 그걸 아주 좋아합니다, 아주 사랑하지요.
월남쌈에 썰어도 넣고, 토스트에 얹어먹고, 그냥도 숟가락으로 퍼서 먹고...
미국이며 호주며 뉴질랜드며 그리 그리울 것도 없는데,
바로 아보카도 때문에 그곳들이 그립고는 하다니까요,
체리랑 망고랑 켄달로프랑 락멜론도 있지만은.
그걸 한국에서 먹어본 적은 있습니다.
10여년 전이던가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꽤나 비싼 걸 사먹었지요.
“아보카도 땜에 미국 가고 싶다니까.”
아보카도를 먹어보지 못하고 보낸 게 2년 여 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마침 대해리 들어온 기락샘이 그래요.
“여보, 인터넷을 사랑하라니까.”
글쎄, 왜 그 생각을 못했던 걸까요.
요새 인터넷에 없는 게 어딨답니까,
더구나 서울의 대형매장에 가면 간간이 팔기까지 한다는데.
당장 두 박스나 주문을 해주었습니다.
아, 언제 오려나요.
순전히 단식기여서 더 먹고 싶어 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단식은 음식을 더욱 귀하게 여기게도 하지요.
그래서 맛없는 것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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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6.흙날.맑음. <보식 셋째 날(몸무게: 59.5kg)>


오늘은 완전히 평상식을 회복한 듯해서 너무나 기뻤다.
아침에는 어머니께서 몸에 먹을 것이 안 들어가서 그런지 너무 아프셔서 내가 저녁과 아침에 계속 어머니를 주물러드렸다. 아, 단식을 하면 자기 몸이 어디가 아픈지 안다고 하셨다. 사흘이나 나흘째 심한 통증이 오는데, 바로 그 부위가 건강하지 못한 부분인 것이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비장이 지나는 혈 자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어머니께서 아침에 우리 부속건물에서 학교로 내려오기 힘들다고 하셔서, 내가 혼자 내려와서 아침을 해 먹었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해봤지만 된장죽을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먼저 밥 한 공기에 물 두 그릇을 넣었는데, 조금 있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서 보니, 밥이 눌어서 타고 있었다. 그래서 물을 한 바가지 퍼놓고 계속 부었더니, 비로소 죽다운 죽이 되었다. 중간에 된장을 넣을 때 어머니가 한 것이 생각해내서, 된장을 물에 풀어서 넣고, 두부도 으깨 넣었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어머니가 사이사이 나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많은 것 같다.
오후에 아버지가 오셨을 때 놀라셨다. 내가 먹는 것을 (감식, 보식 포함) 9일이나 참았다는 것과, 된장죽을 잘 끓였다는 것 때문이었다.(된장 죽은 매우 맛있었다!)

단식을 하고 나니 먹을 것을 귀하게 여기게 되고, 내가 잘 먹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 몸에 있던 나쁜 독소와 음식물을 쫙 뺐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몸이 가벼워서 매우 좋다. 단식을 할 때는 다음부터는 단식을 안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다음에도 단식을 꼭 하고 싶다.
내 인생에 많은 배움이 된 날들 중 가장 인상 깊은 배움인 것 같다. 2010년 10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그렇게 내 열세 살의 9일이 흘러갔다.

(열세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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