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7.해날. 비 오다가다 / 단식 이레째

조회 수 1151 추천 수 0 2010.11.16 17:32:00


2010.11. 7.해날. 비 오다가다 / 단식 이레째


울산의 이정애님이 건너왔습니다.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먼 이웃이고,
물꼬의 귀한 논두렁이시며, 계자 밥바라지이기도 하시지요.
부선이랑 건표랑 잠시 짬 내서 놀러왔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반가움으로 아주 소란도 하였지요.

오는 길, 안개가 아주 짙었더랍니다.
“엄청난 기계문명을 이룬 이 21세기에
겨우 앞차의 불빛에만 의지한 채 달리는데...”
그래요, 때로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과학문명이란 게
우리 삶에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하지요.
고도로 쌓아올린 기계문명이
자연의 뒤채임 앞에 얼마나 하잘 것 없고는 하던가요.
이 거대한 우주 안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변변찮던지요...

점심밥상을 준비하는 동안
모두 모여 앉아 감을 깎았습니다.
달골에서 따 내린 것들이지요.
점심을 먹고 류옥하다 선수가 이장님댁 콩밭에 일을 도와주러간 동안
남은 이들은 도란거리며 마당 한가운데 있는 평상에 누워 볕을 쪼이기도 하고
마당을 어슬렁거리거나 노니작거렸더랍니다.
두터운 가을볕이었지요.

하다가 돌아오고 모두 감을 따러 호두나무 아래 밭에 갔습니다.
지난 몽당계자에서 현진이가 떨어진 적도 있어
조심스럽기 더했지요.
마당에서 다시 감을 이어 깎고,
옷을 벗은 감들이 현관에 발처럼 드리워졌더랍니다.

마늘도 심으러 갔습니다.
어제 소사아저씨는 밭을 다 패놓으셨지요.
일을 끝낸 아이들은
공도 차고 살구나무 아래서도 놀고 농구도 했습니다.
해 지는데,
먼 길 갈 사람들도 보내는 사람들도
아쉬워라 마당에 오래 서 있었지요.
가고 싶잖은 발을 떼며 건표랑 부선이, 울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금새 다시 오면 되지요, 뭐.

저녁, 상주 옆 용산면의 한 채식식당에 갔습니다.
영동생명평화모임의 임시 만남이 있었지요.
마침 김종근님 안댁이 식당을 열게 되어
인사 겸 모두 모이게 되었더랍니다.
김종근님 손석구님 김성봉님, 그리고 두 객원분이 자리 함께 했고,
류옥하다가 못다 했던 <로마인 이야기> 발제를 했답니다.
농사 이야기를 하니 자연스레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우리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회복할까,
고민들도 나누게 되었더랬지요.

밤에 돌아와 오랜만에 간장집 불을 땠습니다.
하다랑 여느 때처럼 양말을 빨아 솥단지에 올리고
잦아든 불에 프라이팬을 놓고 은행도 구워먹었지요.

“부산이라는 곳도 이렇게 추운데(!) 대해리는 얼마나 추울까요.”
군대 가 있는 품앗이 무열샘으로부터 소식을 듣습니다.
벌써 16개월 반이나 되었더라구요.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전역을 하게 된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어느새 스물 두 살이더라구요.
스물 두 살....5학년 때 물꼬에서 했던 연극 제목이 '스물 두 살'이었습니다.
전태일에 관한 연극이었지요. 
전 제가 스물 두 살이 되면 꽤나 그럴듯하고 능숙한 사람이 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전 여전히 서툴고 모자라고, 전태일이라는 사람을 입에 올릴때마다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그런 제 모습이 싫지는 않습니다. 
많이 서투르게, 모자라게, 여기저기 헤메면서 그렇게 20대를 보낼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가 배웠던 것들, 잊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배운 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자 생각했습니다.
물론, 입대한 이후로 아는 것보다, 결심하는 것보다 행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여실히, 정말 여실히 깨닫고 있지만요. \\\'나\\\'라는 게 어찌나 깨부수기가 어렵던지...”
하루 빨리 물꼬에 오고 싶다 했습니다.
“올 겨울은 또 얼마나 행복할까요.  보고 싶습니다, 옥샘!”
그리고 덧붙이길 다음에 오면 보글보글에서 호떡을 맡을 거라지요.
그 ‘스물 둘’,
저는 물꼬의 뿌리가 되었던 ‘열린 글 나눔 삶터’를 시작했더랬습니다.
스물 둘, 아름다운 나이입니다.

sbs에서 늦은 아침부터 취재를 와 있습니다,
‘sbs 생방송 투데이’의 이유노 PD님, 강민성 AD님.
류옥하다 선수가 썼던 오마이뉴스 글들을 보고
그 아이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보겠다고 온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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