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12.쇠날. 맑음

조회 수 965 추천 수 0 2010.11.25 10:07:00

2010.11.12.쇠날. 맑음


가을볕이 좋습니다.
평상 위에서 은행이 잘도 말라갑니다.

고래방 앞 꽃밭,
된서리 지나간 산마을 어느 구석이 아니 그럴까만
그곳도 꽃 지고 잎 진지 오래,
가지들만 남았습니다.
그 한쪽, 장독대에서 항아리 셋 갖다 놓았지요.
올해는 감식초가 그곳에서 익어가겠습니다.
틈틈이 떨어진 감을 주워다 차곡차곡 채우고 있다지요.
오늘도 몇 넣어두었습니다.

먼지풀풀도 있는 날,
식구들이 다 제 구역으로 가 쓸고 닦았네요.

아이가 오마이뉴스에 단식일지를 이어 쓰고 있었습니다.
거기 ‘좋은 기사 원고료’라고
다른 사람이 그 기사에 대해 원고료를 줄 수 있는 제도가 있지요.
그런데 어떤 분이 아이에게(그 아이 처음으로 사흘 단식을 했지요) 글 잘 읽고 있다며
단식이 끝나면 맛난 것 사먹으라고 큰돈을 원고료로 주셨습니다,
나중에 단식과정도 공유하자며.
아저씨는 아저씨가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눠주셨으니
자기는 자기 대로 이 산골에서 나눌 수 있는 걸 나누겠다며
아이는 주섬주섬 이것저것 챙겨 상자를 만들고 있었지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대전을 다녀옵니다.
뇌가 움직이지 않은 채 큰 병원에 누워있던 집안 사람이
드디어 깨어났다 했습니다.
그러나 순간 순간의 기억이 엉킨다지요.
산소가 공급되지 않았던 시간동안 상한 몸이라 그럴 겝니다.
바라지를 하고 있는 아이의 엄마와 잠시 함께 나와
아이 분유며 기저귀며 먹을 것 몇 가지 장을 봐서 들여보내줍니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다행입니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이고, 또 간호하는 어른은 어른이라지만,
젤 걱정이 아직 걸어다니지도 못하는 갓난쟁이입니다.
얼마나 고생일지요...

미국인 친구가 통역을 부탁해왔던 일 있어
병원을 나서 부랴 부랴 달려갑니다.
고속도로 위에서 재차 확인 전화도 받지요.
제 영어가 그럴싸한 것보다
사실 우리가 서로 서로의 말을 잘 알아듣기 때문에
자주 받고 있는 부탁이랍니다.
누구에게라도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감사할 일입니다.

그예 아보카도를 먹게 되겠습니다.
“인터넷을 사랑하라니까.”
그러며 지난 흙날 기락샘이 주문해준 것입니다.
미국이나 호주가 그것 때문에 그리울 만치 좋아하는 것을
우리 땅에서는 없겠거니 2년 여 아쉬워만 하고 있던 물건이지요.
참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게 한국에는 없을 거란 생각을 하다니...
헌데 오는 과정에 영동읍내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골짝까지 들어오려면 바로 바로 오지 못한다는 것 이해하지만
면소재지까지 들어오기도 할 텐데,
번번이 잊었을 테지요.
이렇게까지 무성의할 수는 없다면 받지 않고 돌려보내겠다 하니
그제야 한 밤에라도 오겠다 연락이 왔지요.
낼 오후는 여기 오는 택배 없어도 꼭 들어온다 하였습니다.
산골 사니 자주 더디지요, 여러 가지가.
그런데, 괘한습니다(괜찮습니다).
사람이 죽어 넘어가는 일이 얼마나 많겠는지요.
우리 사는 일, 많은 것이 그리 더뎌도 아무 상관없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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