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빈들 여는 날, 2010.11.26.쇠날. 맑음

조회 수 1261 추천 수 0 2010.12.12 02:19:00

11월 빈들 여는 날, 2010.11.26.쇠날. 맑음


가끔 비행기 지나는 소리가 계속 됩니다.
지난 23일에 있었던 연평도 포격사건의 여파이리라 짐작하지요.
‘질앗티
콩이삭 벼이삭 줍다 보면 하늘을
비행기 편대가 날아가고
그때마다 엄마는 그늘진 얼굴로
내 손 꼭 쥐며
밭두덕 길 재촉했지’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의 서시 한 구절이 떠오르는 여러 날이었더랍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됩니다...

날도 차고 이번 학기 쇠날마다 오후에 잡혀있는 일도 있던 터라
살짜기 그냥 건너갈까 하던 11월 빈들모임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지도 있기 전 새끼일꾼들이 오겠노라 연락 주었지요.
그 덕에 하게 된 빈들이랍니다.
그래서 주로 가족 중심으로 오는 빈들모임이
이번에는 또 다른 구성도가 된 게지요.

마침내 10년 넘어 된 중등교사직을 내던진 진홍샘과
황간에서 새 삶을 시작한 지은샘,
그리고 자립을 위해 애쓰는 세아샘이 들어왔고,
새끼일꾼 재훈, 수현, 윤지, 가람이가 닿았으며,
6년 부선이가 울산에서 홀로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거기에 류옥하다며 이곳 식구들이 더해졌지요.
지은샘을 바래다 주며 광평농장의 현옥샘,
도토리묵을 함지박 만하게 쑤어서 들여보내주기도 하셨답니다.

‘...물꼬 오기 전에 맨날 손꼽아 기다리고 시간이 빨리 안가서 마음 졸이는 느낌이 뭔가 좋다. 내가 살면서 기대할 것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한 거 같다.
그렇게 기대를 안고 다 같이 만나 물꼬에 딱 들어오는 순간(교문을 지나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몸과 마음으로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이 또한 물꼬의 매력!...’
(윤지가 남긴 글 가운데서)

저녁 먹을 참엔
모 방송국 다큐멘터리 제작팀에서 작가와 PD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산골에서 홈스쿨링하는 류옥하다를 담고 싶어하던 이들인데,
파급력이 너무 큰 프로그램이어 거절했더랬지요.
우리의 목적은 유명해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환상을 심지 않게, 그러나 물꼬가 잊히지 않게,
우리 편에서 방송을 잘 쓰는 방법이지요.
마침 다른 촬영 있어 온 길에
이곳에 한번 와보고 싶다하기 먹는 밥에 숟가락 올린다 했습니다.
다른 프로그램으로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저녁 밥상 중심음식으로는 윤지가 준비해온,
대구에서 유명하다는 납작만두를 구워 떡볶이를 얹어 먹었습니다.

방송국 분들 보내고 나니 좀 늦어진 시간이 되었지요.
근데 외려 달 잘 차올라 즐거운 밤길 되었네요,
날이야 찼지만.
서로 서로 비껴가니 정작 오래 물꼬를 만나고도
처음 인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좋은 곳에서 또 이렇게 좋은 연들이 번져가지요.

청소명상을 하고,
창고동 난로에 둘러서서 노래명상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요, 이곳에서 일상만 또 명상인 줄 아셨지요?
노래도 명상이 된답니다.
‘청소를 하고 노래명상, 춤명상을 하는데 ‘아, 진짜 이게 좋은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음악시간에 이렇게 노래 부르는 시간 엄청나게 많이 주어진다. 하지만 다 같이 마음을 담아서 모두를 위해서 서로를 마주보고 쳐다보며 소통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냥 마냥 뭉클해지고 아름다웠다.’
나중에 윤지가 이리 썼데요.
늘처럼 춤명상도 이었습니다.

햇발동으로 건너와 거실에 둘러앉으니
‘실타래’가 오래 풀립니다.
야참이 차려지지요.
사람들이 오면 늘 하는 생각입니다만,
모두가 외롭고 모두가 힘들며 모두가 너무나 할 말이 많습니다.
가족 틈에서 부대끼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사를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요.
그런 이야기들이 가족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는 생각을 서로 공유한 이들 속에선
애정 어린 투정들이 가능합니다.
그리하야 부모 형제가 꼭 도마 위에 올라가지요.
“우리 엄마는 제가 뭐 하나 잘못했다하면 좌악 훑어!”
지나간 일들도 다 끄집어낸다는 거지요.
그러자 너도 나도 동의합니다.
저라고 어디 예외일까요.
“야아, 위로가 되네, 나는 나만 그런 줄 알고.
늘 죄책감이 있었는데...”
사람살이 꼴새가 다 고만고만한 게지요, 하하.
그런데, 수현이네는 어쩜 그리 적절한 야참거리를 챙겼던가요.
오징어며 주전부리가 아주 적절도 하였지요.

우리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터는 시간!
흔드는 시간!
흔들고 털고 그리고 나아가는 거지요.
그래서 물꼬가 소중합니다,
이곳에 오는 이들도 사는 이들도.
자정이 막 넘어가며 공식 모임이 끝나고도
모두 모여 재잘거리던 별방의 불이 늦도록 꺼지지가 않았지요.
새끼일꾼은 물꼬 일들에 큰 도움꾼이기도 하지만
한편 물꼬로서는 어른으로 건사해야 하는 아이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오고가는지,
어떤 관계들이 있고 어떤 사연들이 있는지
헤아리고 살피고 보듬고 혹여 문제라도 있으면 해결을 돕기도 해야 하지요.
지난 여름 이후 그들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듣게 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참, 같이 공부하고 있는 한 벗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해야할 작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찾은 게 있어 보내준다 하였지요.
바쁜 이곳 삶을 헤아려
어려운 시간 손을 좀 덜어주는 이들이 여럿입니다.
고맙고 또 고마울 일입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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