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빈들 이튿날, 2010.11.27.흙날. 비바람 지나는 한낮


아침 수행이 있었지요.
몸에 집중해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으로 옮겨보지요,
온 정신이 번쩍 드는 겨울 이 아침처럼
우리 사는 일이 그리 선명한 맑음이도록.

반나절은 밖에서 일을 하고
반나절은 안에서 공동작업을 하자던 일정이었습니다.
뭘 먼저 할까, 잠시 고민하다
어려운 일을 앞에 두기로 하였지요.

나무를 하러 갑니다.
너무 쉽게 방을 데우는 요즘입니다.
방이 따숩기까지, 밥이 내게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들이 스몄을 것인가요.
바람찬 데도 트럭 뒤에 올라타겠다는 젊은 것(?)들이었습니다.
목을 다 드러내놓고도 웃음이 그치지 않는 젊음들이었지요.
나무 쓰러져 마르도록 사람 구경 못하던 숲에 듭니다.
나뭇잎 내리고 덮히기를 오래
보물 찾듯 큰 둥치들을 끄집어냈지요.
그 무게만도 벅찬데
그것들을 들고 경사진 길을 오르내렸습니다.
가끔은 꾀도 나지만 늘 우리를 추동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열심히 하는 이들이 그렇습니다.
눈이라도 오려나요,
멀리 비가 꽉 묻어옵니다.
바람도 크게 휘몰고 있었지요.
“이제 그만 가자.”
시간 아니 바꾸길 잘했지요.
그제야 참았던 비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산중일기


        가랑잎 뒹구는 소리에도 내다본다

        누가 찾아들기라도 할 양이면

        방문이라도 열고

        앉은 날 흔들어도 부르겠건만

        어찌하여 나는

        엉덩이 이리 들썩이는가


“우와!”
트럭에서 부려지는 나무를 보며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일을 할 땐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일을 하며 늘 새기는 말이지요.
정말 살림에 보탬이 큰 시간 되었습니다.
“국수로 되겠어?”
그런데, 늦은 아침을 먹었기
일하고 온 사람들한테 국수를 내밉니다.
오후 참을 내려니까요.

오후엔 그림자극을 만들었습니다.
그림 동화책 하나를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을 만들었지요.
계자에서도, 바깥에 강의를 가서도, 잘 쓸 교구이지요.
일을 같이 하다보면 알지 못하던 뜻밖의 모습들을 만납니다.
사람을 잘 알려면 같이 일을 해보라지 않던가요.
부선이 그림 그리는 재주가 그렇게까지나 좋은 줄 미처 몰랐더랬네요.
“맨날 집에서 그림만 그리고 놀아요.”
결국 동물들 그림을 다 맡아 그렸지요.
종대샘은 손재주 좋은 이답게 칼질을 꼼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거기 셀로판지를 열심히 붙이고
그리고 철사로 손잡이를 만들었지요.
그런데, 가위로 철사를 자른다 하기 가위 버릴까 걱정하니
재훈샘이 알아서 다 한다 했더랬답니다.
가위 뒷부분으로 어찌 어찌 하나 부다 싶더니
으윽, 웬걸요, 가위에 이가 여럿 빠져있던 걸요.
잊어먹지 말고 재훈샘한테 가위 사오라 해야겠습니다요, 하하.

이 밤도 ‘실타래’가 있었지요.
차와 음식이 나왔습니다.
얘기는 더 많이 나왔지요.
돌아가며 요새 자기가 하는 생각, 고민들을 털기 시작했습니다.
잘 듣고 잘 말했습니다.
애정 어린 대화는 그런 것일 겝니다.
말하기, 듣기, 격려와 방향 찾기, 함께 고민하기, ...
학생과 교사의 사이에 대해서도 한바탕 격정적인 얘기들이 흘렀지요.
그놈의 체벌이란 것 때문에 말입니다.
학생 처지에서 말도 안 되는 선생,
선생 처지에서 말도 안 되는 아이,
서로 헤아려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매든 선생한테 굴복하면서
아주 정상적인 걸 요구해도 순한 선생은 무시하는 아이들도 있다하데요.
이 자리에서 류옥하다는 자기 생의 한 전환점을 만났다 했습니다.
그리고 뒤에 이리 썼지요.
‘...어머니는, 아니 고전에도 보면, 사람들은 책의 한 문장이나 어느 순간에 자신의 신념이나 방향이 결정된다고 한다.
내가 지금 그렇다. 난 결심했다. 내가 커서 정치가가 되어, 썩은 세상(註. 선한 사람이 왜 선하게 살 수 없는가)을 바꾸겠다고. 오늘은 내 꿈이 확정된 날이다.’
순전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로 정치가를 꿈꾸던 그가
아주 탄력 받았더라니까요.

한밤, 모든 공식 일정이 끝나고 별방에 모여 속닥거릴 적
아주 작은 갈등 하나 있었습니다.
이 작은 규모 안에서도 골이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꼭 그러하지요.
왕따를 당하면 왕따를 당하는 개인의 문제도 있을 겝니다.
그런데 윗사람의 역할이란 그런 것을 조율할 줄 아는 것 아닐지요.
더 좋은 건 그 관계들 안에서 푸는 방법일 테구요.
물론 때로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하기도 하지요.
어쨌든, 내 즐거움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가,
우리 한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한 사람에게 상처입힐 만큼
그렇게 중요하고 요긴한 얘기들을 하고 있었는가 말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용과 배려를 깊이 배우고자 하는 이곳에서
특히 한 아이를 따돌리는 일을 만나면
너무나 실망스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더구나 그것이 또래 안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버젓이 형님들이 있고, 심지어 품앗이가 있는데도
그런 일들을 잘 조율하지 못하고 있음을 만나면,
아니 외려 더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기까지 한다면
물꼬의 존재이유가 정녕 무엇인가 처절히 묻게 됩니다.
어째서 우리 인간은 이 모양인가, 하고 말이지요.
이곳에서는 그런 일을 만나지 않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한편, 다행스럽게도 상처받은 이가
앞으로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은 없는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리고 살펴주어야 할 지를공부한 시간 되었다 하니
역설적이게도 고마울 일이었지요.)

‘나이값’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디다.
모여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제 나이의 역할이 또한 있을 것입니다.
품앗이일꾼이라면
부엌일이며 바깥일이며 전체 진행을 도울 수 있어얄 것이고
그래서 필요한 일에 움직여줄 필요가 있을 겝니다.
진홍샘이 그리 잘 움직여주셨습니다.
마치 청소년계자에 뒷배가 돼주러 오신 듯하였지요.
소사아저씨와 함께 오후에는 책방에 난로도 놓으셨답니다.
한편,
새끼일꾼이라면 형님들로서 동생들을 살펴보는 행동이 요구될 것입니다.
그저 또래들끼리 놀려고 모이는 곳이 아니지요,
그 즐거움도 분명 크지요만은.
자신을 ‘잘 쓰는 법’에 대한 고민이
늘 함께 하기를 요구하는 이곳이랍니다.
윤지가 아주 훌륭하게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이값 하고 살아야겠다는 배움이 일어나는 밤이었더이다.

모두가 잠든 밤 학교에서는
소사아저씨가 집집이 수도를 틀었습니다.
날 아주 매워질 거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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