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빈들 닫는 날, 2010.11.28.해날. 젖었던 아침이 마른다


절명상을 하며 아침을 엽니다.
절 한 배에 생각 하나 얹습니다.
바닥에 자신을 온전히 엎치며 한 마디 한 마디를 새깁니다.
“어떠한 종류의 폭력도 단호히 거부할 것을...”
오늘 수현이는 이 말에 침잠하게 되더라지요.
처음 해보았다는 진홍샘은 집에서도 종종 해봐야겠다셨습니다.

느지막히 떡국을 먹고 두렛길을 걸었습니다.
이 좋은 산골에 들어 바깥 구경에 소홀하면야
아쉽고 또 아쉬울 테지요.
11월이 가는 산마을은 말라있습니다.
마치 잎 진 나무처럼 말이지요.
그래도 거기 사람이 옴작거리고 굴뚝에 연기 오릅니다.
질긴 일이지요.
사는 게 그러한 일입니다.

돌아와 갈무리 글을 쓰는 사이
빵을 굽고 잼을 바르고 그리고 사과즙을 냅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나가는 이들을 배웅하지요.
이번에도 같이 나가서 자장면 한번 먹는 일을 해보지 못합니다.
몽당계자 아이들이 꼭 하고파 하는 일이고,
새끼일꾼들도 자주 들먹이는 일인데...
생각하고 있으면 하게 되는 때도 오겠지요.
진홍샘은 한 사흘 더 머물 참입니다.
쉬기도 하고 거닐기도 하고 장작도 팰 테지요.
누구보다 그에게 쉼이 필요한 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여름 오랜 고민을 끝으로 교사직을 그만두었습니다.
착하고 순한 사람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나가는 일이란
얼마나 고단할 것인가요.

사람들이 떠나고 마당에 남은 나무더미를 봅니다.
아고, 정말 애들 썼습니다.
일이 일이 되도록 하는 건 분명 의미가 큰 일입니다.
한동안 아궁이를 잘 지필 테지요.
고맙습니다.
사람들한테 두고두고 자랑도 하겠습니다요.
그리고,
모임값은 형편대로 내주시면 되겠다 하고 공지하고 있는데,
이곳 살림을 보태준 이들도 역시 고맙다마다요.

저녁을 먹고 식구들 모여 앉아
그림자극 상영상자를 만들었습니다.
빈들모임에서 공동작업했던 그림자인물들이 펼칠
극장이 될 것이지요.
산골 겨울밤 불가에서 도란거리는 식구들처럼
자잘자잘 재미가 있는 밤이었더랍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면 북적이는 대로 또 비우면 비우는 대로
소소한 웃음이 흐르는 산골살이입니다.
사는 일이 또 한 순간
고맙고, 고맙고, 고맙지요.

아, 수현이가 감기가 짙었는데,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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