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 4.흙날. 맑음 / 김장 사흘째

조회 수 1026 추천 수 0 2010.12.22 01:12:00

2010.12. 4.흙날. 맑음 / 김장 사흘째


김장을 하고 있을 때면 뒤란 가마솥도 꼭 불을 지피게 됩니다.
거기 무청을 삶아 시래기를 내고,
콩을 삶아 메주를 빚어 걸고,
멸간장을 달여내곤 하지요.
하지만 올해는 메주를 쑤지는 않습니다.
김장때면 메주도 같이 쑤고 고추장도 하는 결에 담습니다.
근데, 고추장은 넉넉하여 아니 하고,
메주는 우리 콩은 없고 값은 높아, 마침 된장도 충분하여
해를 거르기로 하였습니다.
대신 다른 해처럼 넘들 나눠주는 건 어렵겠지요.

그래도 그냥 가면 섭섭하지요.
아궁이 불을 피웁니다.
시래기 삶아 널었고,
콩을 두어 댓박 삶았습니다.
띄우려구요.
어머니 참 좋아하시는 청국장입니다.
푹푹 삶아
된장집 옆방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이불 푹 덮어두었습니다.
쓰고 있으니 제가 한 일 같네요.
‘무식한 울어머니’ 하신 일이었더랍니다.

어제 쑤었던 묵 아주 곱게 잘 굳어있습니다.
맛난 거나 어쩌다 하는 음식이라도 있으면
이웃 어르신들 생각나지요.
이리저리 살펴주시는 이장님 내외분도 그렇고,
도움 오래 입었던 여러 댁들도 있습니다.
거동을 못 하시는 어른도 계시지요.
아이 편에 두루 나눠 드립니다.
늦게서야 한 생각, 양념장도 같이 보낼 걸 그랬네요.
에구, 하는 일이 참...

기락샘도 내려왔습니다.
남자들은 뒤란 화덕을 수정합니다.
어설프게 놓여있었던 가마솥입니다.
다시 흙을 실어다 돋우고
벽돌을 쌓고
그리고 다시 몸채를 든든이 세웠지요.
집안 어르신이 한 해 두어 차례 이렇게 바깥살림을 살펴봐주십니다.
참 많은 손발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지요, 여기.
하늘에, 땅에, 그리고 사람에, 고마운 줄 아는 생이라지요.

물 뺀 절인 배추가 가마솥방으로 들어옵니다.
속을 버물고 넣기 시작하지요.
잠시 바깥 냉장고도 뒤집었습니다.
바닥에 고인 물만 좀 닦자는 것이
문에 달린 칸칸들을 닦게 되고
그러다 그러다 옆칸을 하고
하는 김에 내리 냉동실을 정리하고...
일이란 꼭 그런 절차를 밟게 됩디다.
“백김치도 좀 담으까?”
‘무식한 울어머니’, 뚝딱 백김치도 한 항아리 담아주셨습니다.
해지기 전 일찌감치 김장은 그리 마무리 되었네요.
일도 하기 전 걱정부터 앞서는 일들을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어이하여 저리도 수이 하시는지...

무말랭이를 위해 남은 무들도 썰고
가래떡도 잘 굳었기 썰었습니다.
겨울이 걱정 없어지니
홀로 살거나 집을 떠난 이들도 생각나지요.
전화를 돌려 몇 포기씩 나눠주려 약속들을 잡았더랍니다.
그리고, 낼모레가 생일, 선물이 닿았습니다.
늘 고마운 남편입니다.
길었던 하루, 사는 풍경이 이러하다, 평화로웠습니다.

여러 날이 푹해
고맙고 또 고마웠던 김장이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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