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 8.물날. 눈

조회 수 902 추천 수 0 2010.12.27 11:31:00

2010.12. 8.물날. 눈


물기 머금었던 오전이더니 비 흩뿌렸고,
오후로 넘어서면서는 눈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산마을이 눈에 잠겨들었지요.
저녁답에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눈 펄펄거렸습니다.
이럴 때 아, 아름다운 북국의 한 나라에서
고마웠던 이들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집니다.

교무실에서 저녁 일을 끝내고
아이랑 걸어 오른 달골이었습니다.
아이가 읽고 있는 책, 하고 있는 생각들을 듣지요.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상의 세계도
꽤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바깥으로 나갈 일로도, 물꼬의 자잘한 일상을 살아내는 일로도
자주 아이는 저 홀로 지내고 저 홀로 자랍니다.
그러다 이런 순간 그 아이에게 스민 시간을 깨닫고는 하지요.
고맙습니다, 사는 일.
살아서, 여기 살아서, 아들과 살아서 고맙습니다.
“희망의 등대에서 쉬어가자!”
아이는 언제부터 달골 오르는 길에 세워진 가로등 하나를
그리 일컬었습니다.
부지런히 깔끄막을 오르다보면 숨도 그만큼 차오르지요.
그런데 거기 잠깐 멈춰 숨을 돌리면
달골이 금새입니다.
우리 생도 그리 한 번씩 쉬어가며 나아갈 량입니다.

대학생들한테 하는 수업 하나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열심히 했고,
학생들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그만큼 애정도 컸지요.
“1월에도 하면 안 될까요?”
물꼬의 긴 겨울,
눈으로도 모진 추위로도 바깥나들이가 쉽잖지요.
그런데, 할 수만 있다면 수업을 계속 해나가자는 부탁입니다.
간곡했지요.
고마웠습니다.
공부란 건 앞에 선 이도 앉았는 이도 그런 즐거움이 있어얄 테지요.
계자 이후로 어찌 짬이 되려는지...

부모교육을 가르치는 분을 만나
잦은 교류가 있었던 이번 학기였습니다.
3년 전에도 함께 보낸 학기가 있었더랬지요.
의지가 많이 되었던 분이셨습니다.
한 해를 보내며 밥 한 끼 나누자 했고,
읍내에서 뵈었지요.
돌아오는 마을 들머리,
으윽, 차가 미끄덩하였네요.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가 뒤에서 차근차근 행동을 안내하고 있었지요.
천천히 달렸기 망정이지 큰일 날 뻔하였습니다.
얼어붙은 이 겨울, 어찌 움직이며 다녀야하는가,
아주 훌륭한, 각성의 한 순간 되었다지요.

집안 어르신들 오셨을 적 일하다 잠시 눈이라도 붙이라고 둔
가마솥방 무대에 깔린 이불을 이적지 치우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움직이다 손이라도 넣으러 쏘옥 들어가기 좋았지요.
어둔 길을 달려와 저녁밥상을 차리고 거기 들어갔는데
거의 쓰려져 눈이 감겨버렸더랍니다.
마을 어귀에서 차 미끌하던 순간이
굉장한 피로를 몰고 오기라도 한 것이었을까요?
잠시 누웠을 뿐인데 눈뜨니 한 시간이 넘어 갔댔네요.
정말 동면에 들어야 할 겨울인가 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2534 2010.12.31.쇠날. 맑음 옥영경 2011-01-03 1083
2533 2010.12.30.나무날. 눈 옥영경 2011-01-03 1067
2532 2010.12.29.물날. 눈 2011-01-03 1007
2531 2010.12.28.불날. 눈 위에 눈 옥영경 2011-01-03 1163
2530 2010.12.27.달날. 잠시 풀리는가 싶더니 오후 다시 언다 옥영경 2011-01-03 1167
2529 2010 겨울, 청소년계자 갈무리글 옥영경 2011-01-01 1130
2528 2010 겨울, 청소년 계자 닫는 날 / 2010.12.26.해날. 눈 옥영경 2011-01-01 1051
2527 2010 겨울, 청소년계자 여는 날 / 2010.12.25.흙날. 맑음 옥영경 2011-01-01 1157
2526 2010.12.24.쇠날. 싸락눈 내린 새벽 옥영경 2011-01-01 1104
2525 2010.12.23.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1-01-01 986
2524 2010.12.22.물날. 맑음 / 동지 옥영경 2011-01-01 1260
2523 2010.12.21.불날. 맑음 옥영경 2010-12-31 1118
2522 2010.12.20.달날. 맑음 옥영경 2010-12-31 971
2521 2010.12.19.해날. 맑음 옥영경 2010-12-31 962
2520 2010.12.18.흙날. 맑음 옥영경 2010-12-31 1001
2519 2010.12.17.쇠날. 눈 옥영경 2010-12-31 1217
2518 2010.12.16.나무날. 맑되 꽁꽁 언 옥영경 2010-12-31 980
2517 2010.12.15.물날. 맑으나 얼어붙은 옥영경 2010-12-31 975
2516 2010.12.14.불날. 맑음 옥영경 2010-12-31 893
2515 2010.12.13.달날. 눈, 눈비로 변해가다 옥영경 2010-12-31 104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