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0.쇠날. 맑음
날 풀립니다.
읍내의 한 체육관을 주에 두 차례 나가던 류옥하다 선수는
거기서 송년 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우리들의 춤선생(?) 김지선샘을 만났지요.
5년여 만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더군요.
두어 해, 상설학교 한창이던 그때
학교까지 오셔서도 읍내를 나가서도
우리 아이들이 잘 만났던 샘이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손발들이 이곳에 함께 해왔던가요.
잊으면 아니 되다마다요.
아침에 교구를 하나 만들 일 있어,
아이가 도왔습니다.
본드를 칠하고 하나하나 꼼꼼히 붙이고,
마치 아이 학교 숙제를 돕는 엄마처럼 말이지요.
거친 산골살이에 아이를 너무 기대고 사는 건 아닌가,
그래서 그 아이 삶이 너무 무거운 건 아닌가
자주 측은하고는 합니다.
그나마 씩씩해서 튼튼해서 긍정적이어 다행입니다.
하기야 무에 어쩌려나요,
이런 엄마 만난 것도 제(아이) 팔자려니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랑 걷는 산길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머니, 알아요?”
어떤 가족이 낡은 차 한 대에 올라 전 세계를 여행한다지요.
“어, 나도 기사 봤어. 그 사람들 한국에도 왔대.”
“알아요, 그때 찍은 프로그램이에요. 아빠 집에 갔을 때 봤어.”
“애도 둘인가 차에서 낳았대.”
“저도 봤어요.”
“가족이 얼마나 재밌을까...”
그런데 류옥하다 선수가 이러는 겁니다.
“야아, 애들이 고생이 참([차암]) 많겠다([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