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1.흙날. 맑음

조회 수 1082 추천 수 0 2010.12.31 12:28:00

2010.12.11.흙날. 맑음


죽고 싶다는 한 고교생의 호소를 듣습니다.
죽고 싶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만 생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지요.
아, 모두 그렇지는 또 않겠습니다만
더러 듣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삶이 만근 같은 무게로 올 때가 있지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겠는,
지독한 꿈을 꾸고는 일어나야겠는데 눈을 뜰 수가 없고
수족을 움직이지 못하겠는 것 같은.
문제는 그 아이,
아주 심각하게 자살을 위해 방법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무슨 말을, 무슨 일을 해줄 수 있으려나요.
“정말 이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고 싶니?”
물었습니다.
그렇다데요.
그럴 때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생으로 어떻게 끌어내오시겠는지요?
저는 참 방법을 모르겠습디다.
그저 들었고,
통화를 끝내기 전 정녕 죽여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했습니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
불가에서 말하는 그런 것들 말이지요.
그런데 그가 흥미를 보였고,
다시 통화를 한 시간 여 이어갔지요.
아이들도 살아내느라 애씁니다.
그걸 알아주는 게 젤 먼저라 싶어요...

두어 달 되었을까요.
아이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에 한 차례는 가서 노는 놀이터가 되었지요.
그런데 글을 보내도 실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의견을 듣고 고치는 과정이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원할 때 클리닉을 의뢰하지요.
아이가 단식을 한 경험을 올리고 있을 때,
중학생 아들을 둔 아저씨 한 분이
아이에게 글쓰기를 격려하는 ‘좋은기사원고료’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도학교 한 달 체험기를 올리며
나도 걱정이 많지만 내 배움의 길을 가보련다는 홈스쿨링 사연을 썼을 때도
한 어른이 잘 자라고 있다고 같은 원고료를 보낸 적도 있었네요.
아이는 감동 깊게 읽은 책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일상에서 만난 자잘한 깨달음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사전검열이라며 제게도 보여주는데,
사실 마음 기울여 잘 읽어주지 못함을 고백해야겠네요.
어제는 연탄을 갈며 든 생각을 한 시인의 시에 기대 몇 줄 쓰고 있었는데
사실 너무 식상한 게 아닐까,
자기는 처음 본 시라지만 이미 너무 알려진 데다
많은 이들이 같은 감정을 가지는 거라
기사적 가치는 떨어져보였습니다.
아이는 글을 다시 다듬어보더니 사진을 찍어 덧붙였지요.
오마이뉴스에 내내 가서 노는 것도 아니고
그저 주에 두어 차례 들어가서 글이나 올려놓고 나오는 정도이니
또 시작한 지도 얼마 안돼서
글을 쓰고 올리고 그곳이 돌아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서툰 모양이데요.
근데, 어제 문제의 그 연탄 기사가 통과를 못하고 있었는데,
그 단식 아저씨(이리 부르겠습니다)가 아이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사진을 어떻게 올리는지,
또 거기 덧붙여 몇 마디 조언을 주셨나 봅니다.

그 얘기 전해 듣는데,
다들 사는 게 바쁘고 자신의 글쓰기로도 바쁠텐데,
아, 그 아저씨 참 고맙네 싶데요.
자식 키우는 이라 더하겠지요.
참 보기 좋고 듣기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가지요.
그를 둘러싼 세계가, 사람들이 그들을 키우는 겁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였더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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