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7.쇠날. 눈
아침부터 눈입니다.
참 예쁘게도 내립니다, 많이도 내립니다,
어딘가로 하염없이 걸어 저 끝에서 묻혀버리겠는.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그리 시작하던 시가 있었지요.
‘먼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니,
김광균 시의 최고 절창은 이 행이었다 싶더이다.
올해는 눈이 많을 것만 같습니다.
이 산골에 푹 묻혀 침잠하고 그리고 나아가라,
그런 메시지를 주는 듯도 하지요.
날카롭게 깨우던 김수영 시 한 구절도 읊어봅니다,
각성을 불러일으키던 기침을 하자던.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 마음껏 뱉자.’
나흘째 어깨를 앓고 있습니다.
견갑골 주위에 힘을 주지 않으려니
이제 팔꿈치 아래와 허리통증으로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한참을 고생하겠다 덜컥 겁이 납니다.
마음이 바빠지지요.
더 심하게 앓기 전에,
오래 앓더라도 식구들이 잘 해먹을 수 있도록
밑반찬들이며 쟁입니다.
부엌신발은 어째 저리 쌔까매졌나요.
구석구석 먼지는 또 왜 저리 많답니까.
보이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해댑니다.
이러면 앓을 테고, 그러면 다시 앓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을텐데,
바쁜 마음이라도 벗어나려 바지런을 떨어보았더랍니다.
오늘부터 류옥하다를 비롯한 물꼬 언저리를
경인방송(OBS)의 한 다큐멘터리에서 담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출발해서 들어오려던 촬영팀이
어둔 저녁 길에 걸음을 멈추고 밖에서 일단 묵기로 하였습니다.
예정은 열흘로 하지만 눈 때문에 이리 하루를 밀고 나면
일정이 또 더 길어지진 않으려나요.
슬슬 비웠던 방에 불도 지펴봐야지요.
간장집에 예비불을 넣어보았습니다.
계자 내내 머물 것이지요.
한편, 오늘은 된장집에 들어 잡니다,
두터운 눈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깨통증 때문에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게 필요하겠다고.
어째 갈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