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31.쇠날. 맑음

조회 수 1082 추천 수 0 2011.01.03 17:13:00

2010.12.31.쇠날. 맑음


“어, 마지막 날이네...”
건어물가게 아주머니가 영수증을 쓰면서 그러데요.
그러게요, 해가 가네요.
누구라도 한 해 애썼겠지요.
모다 애쓰셨습니다!

이른 아침 교무실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깨를 좀 다쳐 보름을 넘게 앓아온 통에
이 크고 낡은 살림이 말이 아닙니다.
곧 계자라 이제 더는 미뤄서 일이 될 수가 없겠지요.
손발 서둘러 옴작거립니다.
미룬 글이며, 보내야할 서류며, 부치지 못한 편지며도 챙겨봅니다.
연탄난로가 있긴 하나,
교무실은 한데만 같습니다.
장갑을 뀌면 둔하니까
막 쓰는 장갑 한 켤레의 끝을 자르고 자판을 두드리지요.
그때 소사아저씨 연탄을 쌓아놓으려 오셨습니다.
문밖까지 수레로 실어오고
문 앞에서 다시 난로 곁으로 옮겨 웬만큼을 쌓아두지요.
그런데, 집게로 집고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다시 닫고 나가시길 반복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인데, 열어두고 일을 보실 만도 한데,
귀찮게도 계속 그러고 계셨지요.
안에 있는 이를 위한 배려입니다.
늘 하는 생각입니다만 바로 이런 것이
우리가 배워야할 가치들 아닐지요.

성탄 카드와 연하장들이 날아들어
얼어붙은 산골을 녹여줍니다.
잊히지 않아 고맙습니다.
“...먼 거리를 오가면서 님의 도움과 관심에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진즉에 마음을 담아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독일에서 오는 소포가 이제야 도착했네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이것은 독일에서 누구나 겨울에 즐겨 사용하는... 겨울에 추위를 많이 탄다고 하셨는데 모쪼록 이것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다가오는 새 해에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귀하고 요긴한 선물도 들어왔지요.
여기까지 택배 차들이 오지 못해
온 것들이 면소재지 연락소에 쌓이고 있었는데,
오늘 장을 보러 다녀오며 찾아왔습니다.
“...쌤을 만나고, 물꼬를 만나고...
샘을 통해 얻은 것이 참으로 많아 항상 감사해요...”
품앗이샘들로부터도 소식입니다.
모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물꼬야말로 샘들을 통해 얼마나 귀한 날들을 보냈던지요.

계자를 위한 장을 보고 들어옵니다;
문구점, 철물점, 조명가게, 젓갈가게, 신발가게, 속옷가게,
그리고 자잘하게 필요한 걸 찾을 수 있는 천원마트와 농협마트.
다른 건 몰라도 두부랑 콩나물 정도는
면소재지 작은 가게에서 사들여야지요.
날짜 임박해서 사얄 것도 역시 면소재지 농협마트를 쓰면 되겠지요.
떡 방앗간은 지나쳐도 됩니다.
전영호님이 떡살과 떡볶이 떡을 들여보내주기로 하셨지요.
광평에서 사과즙과 사과도 들어옵니다.
현옥샘이 만두를 빚어 챙겨주셨습니다.
예년과 달리 한 주를 미루어본 겨울계자입니다.
또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요.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주는 천국, 혹은 정토가 거기 있을 거라는 거지요.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새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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