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계자 이튿날, 2011. 1. 3.달날. 흐리다 점심부터 눈 내리다 / 자연의 힘!


규모가 적으니 황토방에서 수행하기 딱 좋습니다.
전통수련으로 몸을 풀고 명상을 하는 ‘해건지기’입니다.
“아야야, 아야야...”“윽, 으윽, 윽...”
누가 들으면 때리기라도 하는 줄 알겠습니다.
무슨 애들이 저리도 뻣뻣하답니까.
어른들은 더 하지요.
“고 1 여름에 여기 와서 한 이후로 아침에 스트레칭한 적이 없어요.”
대학생이 된 유정샘도 그러데요.

해건지기 셋째마당은 ‘아침을 여는 말’이지요.
물꼬의 소사아저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른 아침 교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연탄난로에 넣을 연탄을 가져와 쌓으셨습니다.
그런데, 금새 다시 연탄을 집어 오시는데
꼭 문을 닫고 나가시는 겁니다.”
퍽 귀찮기도 하겠건만 그 행동을 되풀이 하고 계셨지요.
안에 있는 사람을 생각해서였습니다.
귀찮지만 다른 이를 생각해서 그리 하는 것,
그게 바로 배려라는 이름이겠지요.
덧붙여 우리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뭘 가르친단 말인가, 그저 열심히 살아서 보여주는 게지,
늘 그리 말하며 딱히 무엇을 가르치려 들지 않지만
‘무엇이 옳은지’는 가르치고 싶어합니다, 이곳에서도.
그런 생각을 전하는 아침이었더이다.

아침을 먹고 임시한데모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하고파 한 것들,
그리고 어른들이 아이들이 꼭 했으면 싶은 것들을 가지고
어제 의논들을 하였고,
간밤 샘들은 그것들을 시간에 나눠 집어넣었지요.
임시모임에서 속틀(일정표)에 대한 최종 승인이 있었던 셈입니다.
하루씩 걸러하던 보글보글방을 내리 이틀 하기로 하고,
점심 준비와 저녁 준비로 나뉘던 것도
내리 저녁을 준비해서 먹는 걸로 했습니다.
하루쯤은 종일 연극을 하고 놀자고도 했지요.
그런데, 속틀에서 이름을 얻고 칸이 그어져있는 것만이
일정의 다가 아닙니다.
만들기, 종이접기, 산책, 책읽기,...
일정과 일정 사이에서 그렇게 여백을 채우는 것들도 많다마다요.

‘손풀기’를 합니다.
사흘을 내리 할 테고,
그림놀이이며 또 하나의 명상 시간이 될 것입니다.
작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요.
뭘 어찌한 건 아니구요,
제 얼굴 아래 스케치북을 걸듯이 놓았답니다.
잘 그렸다 못 그렸다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옮기며 한껏 즐거웠고,
모두 전시회에 초대받아 작가로 한껏 뽐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저런 즐거움이어야지요.
그런데, 뭔가를 자꾸 묻던 일곱 살 한나에게
현곤 형님이 옥샘 보면서 설명 듣고 그리하라고 속삭였는데,
그 순간부터 정말 한 마디도 않고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데요.
“이게 아이들이구나 싶었어요.”
현곤 형님 그랬지요.

열린교실.
교과목처럼 이곳의 교실들이야
다른 계자랑 크게 뭐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일의 중요성을 헤아리고
그것들을 익히는 과목들이지요.
바느질을 하고 뜨개질을 하고 톱질하고 망치질하고...

‘한땀두땀’.
유리 예림 고을이가 깜찍한 손가방을 만들었지요.
쑥스럽다고 펼치보이기에서 자꾸 뒤로 감추었지만
체크무늬와 단색을 잘 곁들여 미감이 돋보인 작품들이었더랍니다.

‘뚝딱뚝딱’에는 준우 준수 윤수 민재 도균 승 성일,
일곱이나 들어간 대강의실였답니다.
도구들이 영 신통찮았으나 그걸 역이용한 수업이었다나요.
아이들과 땔감을 자르고 썰고 쪼개는 보람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오늘밤은 그걸로 불쏘시개 하려지요.
윤수는 처음으로 톱질을 해보았다 하고,
성일이는 망치로 한껏 화풀이를 했다 합니다.

‘한코두코’에선 현지 자누 세영 현우가 뜨개질을 했습니다.
현우며 엄마 목도리를, 자누는 팔찌를 떴지요.
“현우야, 너도 중2 되면 현곤이 형이랑 같이 새끼일꾼 올 거야?”
“당연하지!”
유정샘의 말이 땅이 닿을까 무섭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얼른 대답하더라지요.

‘한지랑’은 폐강의 위기에 놓인 것을 정인이가 구제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빛나는 성과물이 나올 줄 어찌 알았을까요.
이쁜 한지꽃을 만들고 그것을 엮어 잔치소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계자를 알리는 칠판에다 걸어놓으니,
우와, 정말 잔치알림이었지요.

‘단추랑’을 처음 해보는 경미샘과 새끼일꾼 창우 형님은
준비하며 걱정이 많았습니다.
“...처음 하는 것이라 떨리고
어찌 해야 하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단추는 무엇일까,..’ 그랬더라지요.
다행히도 효정, 한나, 선영이가 무척 즐겁게 만들어서
정말로 정말로 아이들에게 고맙고 마음이 가벼워졌다합니다.
“단추 하나만으로 팔찌, 목걸이를 만들면서 즐기는 아이들을 보면서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따르는 언니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샘들에게 선물도 하고,
그렇게 따스함이 넘치던 시간이었습니다.
색깔이며 배합은 또 어찌나 멋지던지요.

‘다좋다’에는 세훈 해온 훈정 유빈이가
고래방에서 현관까지 눈 치우고 연탄을 깨서 뿌렸습니다.
눈싸움을 하거나 딴 짓할 줄 알았는데 끝까지 꿋꿋하게 하더랍니다.
가끔 게으름을 피우는 재훈샘한테
오히려 좋은 공부가 되는 시간지 않았을지요, 하하.
그 위로 또 눈 내리고 있어 그리 의미가 있지 않았다 하나,
그게 또 그렇지 않습니다.
한풀 치우면 한결 수월하다마다요.

점심을 먹고 ‘구들더께’가 이어졌습니다 .
겨울날 온돌방은 최고의 놀이터이지요.
뒹굴뒹굴 책도 읽고 저마다 무언가를 만들기도 하고
수건돌리기도 하고 엮인 손들을 푸는 놀이도 하고,
바둑돌을 가지고도 놀고 뜨개질도 하고...
눈 날리는 마당으로 나가는 아이들도 있지요.
준수 윤수 도균이는 축구 골대 앞에서 노는가 싶더니
어느새 도균 선수 윤수랑 치고 박고 다툽니다.
도균이는 지난 여름에도 여럿과 싸웠더랬는데,
어제부터도 한 건씩 하고 있지요.
마당을 건너가던 류옥하다가 말리고 있는 걸
해우소 가던 제가 또 달려가게 됐는데,
이곳은 소문 늘 무성도 하여
창문 하나가 열리고 우르르 구경이 났습니다.
비의 질감이 두텁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눈 내리는 날 한 편 찍었다니까요.
그런 것조차 거친 광경이 아니라
서로 피식 웃고 즐거운 씨름으로 변하는 이곳입니다.
둘러친 자연의 힘,
그것으로 순화된 우리 마음들의 힘일 것입니다.

‘보글보글방-1’.
역시 새로울 건 없습니다.
묵혔던 김치 얼려있다 나올테고,
갖가지로 이름 달고 음식으로 변할 테지요.
그러나 어떻게, 그리고 어떤 이들이냐에 따라 다른 게지요.

성일, 예림, 고을이는 김치떡볶이를 만들었습니다.
세아샘이 감기로 좀 처져 새끼일꾼 현곤이 형님을 중심으로,
동진이 형님과 창우 형님도 돕고,
그렇게 떡볶이가 됩디다.
치즈가루도 뿌려 한결 품격을 높였던 걸요.

효정이랑 준수, 윤수, 성빈, 성일이와 함께 김치수제비 끓이던 유정샘,
힘이 좀 들었답니다.
말 안 해도 명단보고 다른 샘들이 충분히 짐작을 했더라지요.
준수 윤수 성빈 성일, 모두 그에게 말을 하고 그 말이 그에게 이를려면
마치 산 하나 건너고 물 하나 건너야 닿는 것만 같답니다, 하하.
어째 성일이랑 승이가 같이 들어오지 않았나 싶더니
음식만큼은 제 좋아하는 것들로 갈렸다네요.
국물도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저들끼리는 뭉툭하게 떼 넣은 반죽을 탓하진 않고
떠먹자마자 밀가루 냄새 난다 투덜거렸다나요.
그러다가는 또 금새, 맛있네 하며 숟가락질을 열심히 했더랍니다.
저들이 만들었다 그 말이지요.
커다란 냄비 채 가마솥방까지 달려와서
성빈이며 남자 아이 셋 아주 코를 빠뜨리고도 있었네요.

김치부침개는 현지 세훈 유리 해온 훈정이가 부쳤습니다.
세훈이, 청일점으로 들어와 한 칼질 한다고 재료 잘 다졌더랍니다.
그런데, 조금 베이기도 했더랬네요.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기적입니다.
“나도 잘할 수 있거든.”
현지랑 해온이도 나서서 제법 하는 칼질 선보여 주었지요.

김치스파게티: 세영, 유빈, 승, 현우 선영.
처음하는 재훈샘도 막막했다는데
아이들이 해보겠다, 자기가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준비물로 척척 챙겨오더라나요.
늘 우리 어른들이 다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문제입니다.
아이들을 믿으라니까요.
아이들에 대한 불신만큼
우리 어른들의 깊은 병이 있을라나요.

김치호떡은 자누 민재 준우 정인 한나가 구웠습니다.
오늘 호떡집은 불이 나지 않았을려나요.
간밤에 해놓았던 반죽은 어찌나 적절하게 부풀어 올랐던지요.
그런데 호떡 속을 섞던 경미샘, 물에 그걸 풀었다지 뭔가요.
그런 거 몰라도 교사하는 데 아무 문제없더군,
하며 놀리기도 잊지 않았더라지요.
“호떡 속 조제를 잘못해서... 그래도 만들면서 먹고 싶어하고, 하고 싶어하고, 기대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또 한 번 힘을 얻었습니다.”
진행하던 경미샘,
제대로 조제 못한 자신을 아이들이 원망하지도 탓하지도 않아 해서
너무 고마웠다 했습니다.
“민재 성격 나오더라구요. 빨리 빨리!”
일곱 살 노릇하던 한나도 자꾸 보챘더랬지요.
정말 잘 먹거든요.
“(반죽한 거) 그냥 먹으면 안돼요?”
애들 좀 멕여서 보내주십시오, 하하.

보글보글방은 설거지가 산더미라 모둠끼리 하는 설거지담당과는 달리
샘들이 모두 팔을 걷습니다.
첫 시작은 수민샘과 새끼일꾼 창우 동진 윤지 형님들이었지요.
“샘,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
정인이는 불가에서 설거지를 하다 잠시 교대를 하게 된 윤지 형님한테
장갑도 주고 손도 잡아줍니다.
참 이쁜 마음입니다.

구들더께 아니어도 틈틈이 구들장을 지지요.
다쳤던 어깨로 보름 넘게 앓다가
나아지는가 싶다 아이들 왔다가 옴작거리며 조금 심해졌는데,
저녁을 먹고 잠시 엎드려 있으니 아이들이 안마릴레이를 했습니다.
어른들이 고것들의 치료로 그리들 다 사나 보지요.
아이들이 거의 전문가 수준입디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이들입니다요.

한데모임이 있는 저녁.
우리가락도 겸하고 있으니 아는 노래도 넘치게 부르지만
새로운 노래도 배우지요.
동요하나 돌림노래하였습니다.
“눈이 잘 맞춰지지 않던 도균 준수 윤수가 잘 안할 것 같더니
우리 차례가 되자 서로 보며 부르는데...”
합창은 그런 것을 끌어내는 힘이 있지요.
음악이 주는 긍정이기도 할 겝니다.
“꼭 메아리 같애요.”
민재의 감탄이었지요.
소리를 얼마나 둥글게 예쁘게들 만들던지요.

한데모임에서 남자방에 쌓아놓은 상들이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창문 쪽으로 세 개씩 세 줄 쌓여있는데,
준수가 오늘 거기 올라갔다 떨어졌지요,
상도 하나 망가뜨리며.
그걸 치워달라는 아이들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어른들 일터 들어가는 데 쌓아 칸막이로 써요.”
“여자방으로 보내요.”
그러나 여자 아이들이 반대를 하겠지요.
“책상을 천장에다 본드로 붙여요.”
“야아, 그러면 쓸 때는 어떻게 쓰냐?”
결국 뛰는 건 마당에서, 안에서는 문제가 안 되도록 덜 뛰기로
모두 합의를 끌어냈지요.

‘대동놀이’,
뭐 말이 필요 없지요.
그건 재밌다, 즐겁다, 신난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아주 배꼽을 잡고 웃고 떠들고 놀았더랍니다.
“아, 이거구나.”
대동놀이가 뭐냐고 처음 와서 물었던 아이들,
그대로 이해가 돼버린 거지요.

새끼일꾼들이 하는 가장 큰 역할은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는 것이지요.
물론 전체진행이 오롯이 갈 수 있도록
자잘한 뒷배노릇을 하는 것도 물론이지요마는.
가람, 현곤, 동진, 창우, 열심히 아이들에게 몸을 대주고 있습니다.
‘...정말 조금만 더 신경 써주고 마음 열고 진심으로 다가가면 아이들도 다가오는 것 같다.’윤지형님의 하루 갈무리글에서처럼
새끼일꾼 여자 형님들은 또 그런 역할을 하구요.
그렇게 새끼일꾼들도 큰 배움의 과정을 밟고 있는 계자랍니다.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이 배우는 것,
돌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넓게 배우는 것!

수민샘은 오늘에야 합류했네요.
‘이 순간들 나눠주고 있는 이들, 나누고 있는 이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움이 함께 생깁니다. 칼에 베인 세훈이가 테이블에 깔린 준수 모두 크게 다치지 않고 씩씩해서 감사했습니다.’(수민샘의 하루 갈무리글에서)
수민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와서 긴 계자 아이의 날들,
그리고 그만큼 또 길었던 새끼일꾼으로서의 날들,
거기 더해 품앗이일꾼으로 움직인 대학의 날들이 있었지요.
미리모임을 하지 않고도 일정 중간에 와서도 바로 스미는 게 가능한 것도
바로 그런, 이곳에서 보낸 시간 덕이지요.
그게 사람에 얹힌 세월이란 걸 겝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수년 만에 올 겨울을 오지 못한 아람샘 대신
글 한편 닿았습니다.
걱정과 격려와 위로, 그리고 사랑을 담은 글월이었지요.
눈물 핑 돌았습니다.
아이들하고 움직이며 다친 어깨 통증이 좀 심해졌던 것에
적이 제 설음 한켠도 겹쳐지지 않았을지요.
물꼬가 그런 애정으로 살아지는구나,
그런 사랑들이 이 아이들에게도 면면이 흐를 게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휘둘러보는 늦은 밤이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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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5 2011. 1.19.물날. 맑음, 밝은 달 옥영경 2011-01-2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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