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계자 나흗날, 2011. 1. 5.물날. 눈발 날리는 아침

조회 수 1217 추천 수 0 2011.01.09 05:23:00

142 계자 나흗날, 2011. 1. 5.물날. 눈발 날리는 아침


새끼일꾼들도 차츰 이른 아침이 몸에 배이나 봅니다.
‘오늘 아침엔 깨워주시기 전에 스스로 일어나서 엄청 기뻤다.”
(새끼일꾼 윤지의 하루 갈무리글에서)
눈 날렸습니다.
쌓인 눈 아직 두터운데 그 위로 또 눈입니다.
아이들과 산책을 나갑니다.
달골로 오르지요.
거기 풀풀거리는 눈 아래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걸으면서 본 대해리가 너무 이뻤다.’(현아샘)
해 뜨는 곳을 향해 소원빌기도 했지요.
나를 위해서도 이웃을 위해서 이 사회를 위해서
그리고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 마음을 모았습니다.

덩어리 덩어리 마을을 향해 산을 내려옵니다.
일곱 살 한나를 달래고 어르고 내려오던 현아샘,
결국 업었지요,
경미샘이 이어 받아 업고.
달골 오르는 날이면 꼭 뭔가 나눠 마시고 내려오는데,
자누던가요,
포도즙을 먹지 않아 아쉬웠다지요.
날이 너무 차서 그랬는데,
그래도 마실 걸 그랬지요?
“좋잖아, 이렇게 걷고. 뭘 더 바란다니.”
“물꼬니까요(이렇게 걸을 수 있지요).
걷고 싶지만 현실로 가면 이런 길이 없잖아요.”
같이 걷던 유정샘이 그러데요.
그렇겠습니다.

손풀기.
사흘째입니다.
명상이고 그림놀이시간이고 관찰의 시간입니다.
며칠이지만 그 사이에 그린 자기 그림에서도 변화들을 찾아냅니다.
1학년 유빈이가 그랬지요.
“여기는 어려운 그림도 쉽게 잘 그리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게요,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쉽게 예술가가 되도록 할까요?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면 되니까
우리는 그림이 쉬웠고,
그리고 잘 그렸더랬지요.
“우리 모두 예술가입니다.”
어째서 예술이 특정인들의 전유물이더란 말인가요.
지난 사흘 우리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누구랄 것 없이 그리 누렸습니다.
‘가지각색의 그림들과 아이들이 저보다 더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그림 그리는데 참 진지했습니다.’(경미샘)

눈썰매장을 갔습니다.
샘들이 일찌감치 밖에서 비료포대에 짚을 넣어두었지요.
푹신한 눈썰매가 마련되었습니다.
“여태 타 본 눈썰매 중 가장 재밌는 눈썰매였다는 말씀을
먼저 꼭 드리고 싶어요!”
경미샘의 감탄이었습니다.
“저도 눈썰매가 가장 재밌었어요. 한번 타봤는데, 미치도록 재미있어서...”
샘들 하루재기에서 새끼일꾼 가람도 그랬지요.
“진짜, 물꼬는 정말 다 가능해!”
재훈샘의 놀라움입니다.
“그런 데를 어떻게 찾았어요?”
걷고 싶지만 이런 길이 없다던 아침처럼
유정샘, 그런 썰매장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는 없답니다.
그렇겠습니다.
“눈썰매, 정말 환상적이었는데, 작은 애들을 안고 탔는데, 중독성이 있더라구요,
애들 너무 너무 좋아하고...”
현아샘도 신이 났습니다.
돌아와 보니 잠바가 찢어져 있더라나요.
“포대 들고 아이들 손잡고 가는데, 정말 제가 더 신나서 미친 듯이 탔어요.”
새끼일꾼 윤지도 말을 보탰지요.
“비료포대가 작아서 패딩으로 탔어요.”
새끼일꾼 창우입니다.
“유정샘이랑 인영이랑 두 번에 한 번꼴로 구르며...”
심지어 재훈샘은 물꼬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두 번째였다나요.
샘들이 이러하였으니 아이들이야 말해 뭐할려구요.
눈썰매만이 즐거움이 아니었습니다.
눈썰매장을 둘러친 논밭에서
세훈이며들이 눈싸움도 지치게 했더랬지요.
‘오전에는 물꼬 ‘전용’ 눈썰매장에 다녀왔는데 이번 애들은 뭘 아는지 정말 잘 탔다. 쌤들과 화합해서 한 명씩 포대를 잡고 눈길을 내려오는데 산골짜기에서 이렇게 순수하고도, 재밌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이 도시에만 가면, 학교로 돌아가면 그저 그런 무심한 아이들이 돼버린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여기서나마 자연과 더불어 많이 누그러지고 편해 보이는 것 같아 좋았다.’(새끼일꾼 인영)
‘...선생님과 아이들이 하나가 돼서 즐겁게 썰매를 타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습니다.’(경미샘)

낡고 어려운 살림은 겨울에 더욱 표를 냅니다.
그만 흙집 지붕이 새고 있었는데,
지붕에 쌓였던 눈이 일부 녹고 있었던 게지요.
아마도 빗물통이 얼어붙어 그랬지 했습니다.
이태 전에도 있었던 일이지요.
남자샘들이 우르르 올라가 깨서 던지고 힘썼지요.
그게 또 어른들의 놀이가 되어
지붕 위에서 즐거운 한 때 되었다 합니다.
힘든 일이 그렇게 함께 하는 손이 있으면 즐거움이 되기도 합니다.
함께!
아름다운 낱말입니다.
‘눈썰매 갔다 오고 지붕 위로 올라가 배수구를 찾아 얼음을 파서 화장실 지붕 위에 있던 눈을 치우고 희중쌤, 재훈형, 가람이아와 놀면서 치우고 몸개그도 보고...’(새끼일꾼 현곤)

점심을 먹고 한 모둠이 설거지를 했지요.
‘설거지 모둠이라 애들을 불러 모으는데 성일이가 안와서 애들이 찾아다녀도 애들 다 못 찾아오길래 제가 책방에 갔는데 숨어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생활하는 데는 고난과 역경이...’
유정샘은 하루 갈무리 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의 일이 의무이기 전에
마땅히 살면서 해야 하는 일임을 어떻게 나눌까,
고민하고 아이들과 잘 나누려지요, 남은 날.

‘구들더께’가 이어집니다.
속틀에야 없는 일정이지만
이곳에선 일정과 일정 사이 이런 황금들이 있습니다.
외려 그것들이 더 물꼬다운 일정들이라지요.
일반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다음으로 건너가는 전이시간일 뿐이라면
이곳의 쉬는 시간은 충분하여 그 시간에 벌어지는 역사가
이미 또 하나의 일정을 이룬답니다.
오늘은 저마다 놀다가 한 무리씩 합쳐지더니,
노래배트와 수건돌리기가 압권이었답니다.

‘미술놀이, 음악놀이가 함께 있는 연극교실’.
토끼해를 기념하는 ‘용궁에 간 토끼’이야기였습니다.
바로 별주부전.
연극 이어달리기였지요.
3막으로 구성하여 각 막을 한 모둠씩 맡고
그걸 잇대 무대에 올리니
한 편의 완성된 이야기가 되었더랍니다.
“연극놀이 하려면 막막한데 창우, 동진이가 창의적이었고 웃기고...”
몸을 아끼지 않는 샘들의 헌신이 늘 함께 하지요.
뭔가 잘 안 되는 샘은 은근히 하기 싫어도 하는데,
의견을 조율하고 그것이 연극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퍽 보기 좋더라 했지요.
희중샘이었습니다.

고래방에서 밥바라지 오신 김무범 아빠를 초대하여,
천 명의 관객 대표였지요,
조명과 음악을 입혀 펼쳐보이기를 하였습니다.
누운 용왕에게 의사가 왕진을 가서
예정에 없이 물폭탄을 멕인 자누의 즉흥연기며
아이들이 정황 안에서 만들어내는 대사가 실감났습니다.
사실 완성도에서, 재미에서, 예년 만큼이지는 못했지만
그 준비과정이 얼마나 넘치는 즐거움이던지요.
분장이며 소품준비며...
‘연극놀이 정말 창의적이었다. 새로운 쌤들과 함께여서 그런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톡톡 튀어나오고 아이들도 정말 적극적였다. 과정이 더 아름답고 중시되고... 이런 시스템 참 좋은 것 같다. 우리의 일상 속의 많은 것들이 그 결과가 좋으냐, 나쁘냐의 유무에 성공, 혹은 기억되기 마련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함께 한 그 과정이 예쁘시다는 옥쌤의 말에 다시 한번 인생의 가르침(?)을 받은 느낌이었다. 좋았다.’(새끼일꾼 인영)
‘준비하는 과정에서 분장, 소품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열정적이었습니다. 즉흥적으로 하는 연극이었는데 잘하였습니다. 짧은 시간 대본 없는 연극 저도 다음에 학생들과 해보고 싶습니다.’(경미샘)

한데모임.
손말을 마무리 하고,
어제 우리가락 시간에 잠깐 배웠던 ‘신아외기소리’를 완성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대동놀이.
물꼬축구 했습니다.
“이야, 사람은 오래 사겨봐야 한다니까.”
우와, 경미샘, 엄청 야물게 달겨 들고 있었지요.
희중샘, 재훈샘, 가람이형님, ...
그 속도감과 힘, 정말 사투였더랍니다.
아이들의 신명과 움직임이야 말로 다 표현이 안 됩니다.
작은 아이들은 상대편의 최강 선수들을 물고 늘어지는데...
모두 역할이 있는 축구였지요.
6년생들의 심판도 볼만 하였답니다.
‘물꼬축구를 처음 해보았는데 참 재밌는 규칙이었습니다. 실컷 웃고, 춤추고, 땀 빼는 시간이었고, 인기 있는 놀이에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경미샘)

다음 계자도 슬슬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합니다.
오늘은 저녁답에 몇 가지를 잘 챙길 수 있었지요.
샘들이 잘 움직이고 계셨으니까요.
좋은 뜻도 사람 없으면 어림없지요.
물꼬를, 그리고 계자를 계속할 수 있도록
기꺼이 손발 내밀러 오는 이들이 이어진다는 것은
언제 생각해도 기적입니다.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사는 삶이지요.
어깨까지 앓고 있는 시기였는데,
용케 샘들이 많이 붙은 계자이고 있지요.
네, 기적입니다, 기적!
그 기적 속을 아이들이 걸어 들어와서
더한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답니다.
크게 아프지 않고, 사고도 없이...
“물꼬 액땜한 거라니까요.”
해온이 말마따나 정말 첫날 유리창을 깨주어 그런 것일까요.
“그럼, 해온아, 고마워 해야 하는 거야?”

새끼일꾼 창우,
대동놀이를 마치고 고래방에서 본관으로 건너오며 그럽니다.
“옥새앰, 여름에도 올게요오오.”
아버지의 강권으로 온 걸음이었는데,
이제 자발적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물꼬 바깥 식구 하나 그렇게 늘었네요.

잠자리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동화에 푹 빠진 아이들을 뒤로 하고
샘들 가마솥방에 모여 하루 갈무리를 합니다.
“썰매, 물꼬축구, 연극...
써먹어야지, 써먹어도 되지요?
공부 많이 해야지, 다니면서...”
고교 교사인 경미샘이 그랬지요.
그래요, 물꼬는 물꼬의 것들을 두루 나누고 싶습니다.
모둠, 열린교실이란 낱말들이 그러하였고,
옷감 물들이기며 손말이며 열린교실이며의 프로그램들이 그랬고,
대동놀이며 명상이 물꼬로부터 널리 번져갔더랬지요, 여러 캠프들에.

어깨 아프고, 감기까지 들었다고
멀리서 다들 같이 작당해 응원이라도 하기로 한 것일까요,
그제 아람샘을 시작으로 어제 영화샘의 전화에,
그리고 오늘은 새끼일꾼 수현의 글이 닿았습니다.
... 청소년 계자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태일 평전을 읽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막연하게 알고 있지만 그 이상은 잘 모르고 있는 저에게 약간의 한심함도 들면서 책을 펼치게 되었지요. 여러 책들을 읽어보았지만 평전은 처음이라 딱딱한 구석이 없지 않겠거니 하고 주욱 읽어 내려갔습니다. 한참을 집중해서 읽다가 문득 눈물이 치밀어올라 책을 덮었어요. (지하철 안이었는데...갑자기 울면 사람들이 쳐다볼까봐(?))
어린 여공들이 햇빛 한 번 못 보고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전태일이 울부짖는 순간이었습니다. 옥쌤께 계자에서 들었던 바로 그 이야기였지만 직접 읽으니 무언가 더 가슴을 아릿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방글라데시나 말레이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이런 어린아이들의 노동이 만연하게 이루어지고 있겠구나..하는 마음에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않은 그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꿈꾸고 직접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제'가 참으로 창피해보였습니다.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위에서 던져주어도 대충대충 하고 싶은 만큼만 하는 저의 모습이.. 전태일이 분신 항거를 한 후에 병원에 실려 가서도 끝까지 어머니께 자신의 못다한 꿈을 이뤄달라고 애원할 때. 그의 꿈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볼 수 있었지요.
청소년 계자에서 옥쌤이 너무 슬프게 전태일씨의 이야기를 한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전태일 평전을 좀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꼬에 다니는 시간이 쌓이며 얻는 것이 참으로 많은 것 같아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세계의 일들이나, 혹은 진홍쌤 같은 분들을 보며 선생님의 입장을 이해도 해보고, 계자를 통해 여러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배우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드는 내 마음을 투명하게 보기도 하며. 그렇게 커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꼬는 제게 있어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갈수록 그 감사함이 더해가고 있어요.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옥쌤이 참 많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옥쌤!! 오랜만에..........받들받들!!!
...

고맙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말한들 그에게 들리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요.
먼저 산 이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아이들,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보다 분명 훨씬 낫습니다.
진화, 맞습니다!
이 아이 초등 3년에 계자를 시작해서
동생과 함께 해마다 여름과 겨울을 예서 났고,
새끼일꾼으로 줄곧 왔으며,
곧 고교생이 됩니다.
한 것도 없이 자신을 키워준 곳이라 하니
고맙고 또 고마울 일입니다.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지금 자고 있는 저 아이들도
이 아이처럼 자라갈 것입니다.
참으로 깊은 인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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