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계자 여는 날, 2011. 1. 9.해날. 맑음

조회 수 1280 추천 수 0 2011.01.12 01:21:00

143 계자 여는 날, 2011. 1. 9.해날. 맑음


눈 온다 했습니다, 그러나 맑습니다.
아이들 들어오는 줄 아는 게지요.
늘 고마운 하늘입니다.
‘날씨가 좋다. 하늘이 맑았다. 애들 마음도 깨끗하다. 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 나도 잘해야겠지.’(새끼일꾼 동휘의 하루 갈무리글에서)

아이들 맞이청소, 어제 했습니다만,
돌아보면 또 미처 닿지 못한 후미진 곳들이 있습니다.
‘오늘 다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면서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일꾼들도 대단하고, 옥쌤도, 삼촌도 모두 모두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큰해우소 똥통을 비우던 가람이와 저, 가장 추운 고래방을 싹싹 청소하던 영욱샘과 유진언니 등. 물꼬만 오면 초인들이 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 일꾼들에겐 화가 많이 났고, 끊임없이 분별이 나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런 불편한 마음들도 공부(?)할 수 있게 해주더라구요.’(새끼일꾼 수현)
아이들을 위해 자기를 쓰며
어른들은 그렇게 더 깊이 배워나갈 테지요.

역에는 성희샘과 경미샘, 그리고 희중샘이 아이들을 데리러 갑니다.
대학 때 와서 초등교사가 되고도 여러 해를 손 보태던 현애샘이 있었습니다.
성희샘은 현애샘의 벗입니다.
현애샘 처음 물꼬 왔을 적 같이 오기로 했던 바로 그 샘입니다.
넓어지는 물꼬의 인연들이 늘 고맙지요.
성희샘은 새끼일꾼들 고생한다고,
야식을 위한 장보기를 돕고 싶어했습니다.
해물과 귤을 샀지요.
그 마음씀이 어찌나 곱던지요.
배웁니다.

역에선 다른 계자와 달리
아이들 이름표와 글집을 쉴 틈 없이 이어서 나눠주었다 합니다.
계자도 그리 순조로울 수 있음 좋으련...
‘준하, 주희, 가야는 물꼬에 오는 동안 내내 장난치고, 동현이는 오랜만에 만났다고 막 말 걸어주고, 세인 세빈이는 제가 무슨 말만해도 웃어주어 고마웠습니다. 형찬이도 제일 앞에서 뒤에 있는 나를 찾아주고, 물꼬에 오는 내내 즐거웠습니다.’(희중샘)

‘아이들이 도착함과 함께 정말 물꼬가 활짝 웃었습니다.’(새끼일꾼 수현)
민하가 폐렴기가 있어 오지 못하고 다음 여름을 약속했습니다.
17, 17, 17.
이번 계자 숫자입니다.
왔던 아이들, 새로 온 아이들, 그리고 샘들 숫자이지요.
박진홍샘과 새끼일꾼 경철이 오지 못한 자리를
새끼일꾼 가람이와 창우가 한 주를 더하고, 윤지가 남아 손을 보태
그 자리 메워주기로 하였답니다.

‘가방 들어줘서 고맙다, (무엇으로) 미안하다, 그런 말 어른들보다 잘하는 것 같다.’(유진샘)
아이들 반가움으로 달려들고,
혹은 기대에 잔뜩 차서 뛰어옵니다.
‘여기선 작은 것에도 행복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수현
늦게 들어선 아이들로 안내모임이 반복되었습니다.
지리했을 것이나 먼저 들은 아이들이 복습삼아 잘 들어주었지요.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는 삶입니다, 여기.
여섯의 아이들, 종찬 종훈 강세현 강민지 래연 세연,
오는 차가 사고가 났다 합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시작이 조금 밀렸다고 혹 마음이 무거울까 잘 살펴주어야겠습니다.

큰모임.
아이들이 그림과 글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엿새 동안 같이 살 사람들이 서로 낯익히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하며 지낼지 의논도 한 시간이었지요.
‘역시 아이들은 생각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이쁘기도 한 것 같아서 좋았다.’(영욱샘)
일곱 살 권세현은 새침합니다.
그러나 자꾸 말거는 새끼일꾼 윤정을
어느새 엄마 같다고 말하였더랬지요.
저 작고 어린 것이 어찌 지낼 꺼나 싶지만
누구보다 잘 지낼 수 있을 겝니다.
온(모든) 아이들이, 그리고 샘들이 그를 도울 테지요.
아이들의 소망, 관심, 하는 생각, 유행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지요.
일곱 살 성빈이는 짱구가 좋다며 자신의 글집에 그려 넣었습니다.
지내는 동안 쓰게 될 공책인 글집은
첫 장에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게 되지요.
“그런데 엄마가 못 보게 해요.”
“왜 그러실까요?”
“너무 장난꾸러기라서요.”
그랬더니 민교가 곁에서 그 말을 더 풀어줍니다.
“왜냐하면요, 애들이 따라할까 봐요,
짱구가 공부도 안하고 장난만 치고 나쁜 행동하고 하니까,
그래서 엄마들이 걱정하는 거예요.”

일정과 일정 사이에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일반적으로 시간표에서 쉬는 시간은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 정도이지만
이곳의 사이 시간은
일정보다 더한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숱한 놀이와, 앞에 한 일정에 대한 복습이며, 수다와, 달리기와...
지난 계자는 책방이 텅 비더니
이번 계자는 책방이 시끌벅적합니다.
또 어떤 일들이 아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질까요...

잠시 재봉질을 했습니다.
일곱 살 성빈이가 장갑이 떨어져 들어왔네요.
“엄마도 바느질 잘하셔? 이런 재봉틀 있어?”
“우리 엄마는 구멍 난 거 안 꼬매요. 뒀다 버려요. 우리 엄마는 왜 그럴까요?”
하하하.
“야아, 너네 엄마가 얼마나 훌륭한데 한 순간에 그리 팔아버리냐?”
멀리서 장선정샘을 잘 아는 종대샘이 한마디 건네셨지요.
지난 여름 밥바라지 엄마와 함께 왔던 성빈이,
두어 해 전에도 왔더랬고, 지난번에 동생 한 살짜리 세현이랑 왔더랬지요.
고 녀석 자라는 것 보고 싶어
이번에 무리하게 애를 내려 보내라 했더랬답니다.
외가에 오듯 온 성빈이였지요.
그새도 컸습디다.
이곳에서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사는 일,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6학년이 되면 세현이도 일곱 살이니까 올 거예요.”
재봉틀 옆에서 수다가 깁니다.
오며 가며 사람들도 재밌어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데 그만 끈이 뒤집어졌단 걸 다 꿰매서야 알았지요.
뜯어 다시 꿰맬까 하는데,
“괜찮아요. 꼬맨 걸 어떡해요.”
그러며 장갑 들고 간 성빈이었답니다.

한데모임.
풍성한 노래가 있을 것이고,
말하고 듣기를 잘 연습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먼저 노래부터.
저절로 신이 납니다, 애고 어른이고.
노래의 힘입니다.
‘한자리에 모여서 아이들을 보니, 내가 순수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것저것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은 시간.’(유진샘)
작고 여리고 힘없는 이들을 위한 눈을 키우면 좋겠다고,
소리를 듣지 못해 말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손말을 익히지요.
그리고 우리가락.
아카펠라로 타령 하나 부릅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음을 익히느라 손동작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제 곁으로 앉은 보빈, 민교, 김세연, 강민지들도
그 손동작도 따라 하고 있더라지요.
예뿌기도 예뿌더랍니다.
사람도 많다보니 할 소리도 많지요.
“밥바라지를 하고 있어서 전체를 잘 보지 못했는데,
한데모임에 들어와 아이 한 명 한 명 쳐다보는데, ...”
나중에 성희샘이 그러데요.
은섭이가 굉장히 진지한 눈빛으로 첨 왔는데 너무 좋다고 말하는데,
신선했답니다.
진지하고 열심이고 좋아하고,
여기서 주려고 하는 걸 잘 받고 있다는 느낌이 화악 들었다지요.
은섭이가 그랬거든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고 재밌어요.”

춤명상.
꼭 남자 여자 서로 손을 안 잡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곳에 처음 온 아이가 그렇지요.
정원이가 곁에 섰는 여자 아이 손을 못 잡겠다 하자 현준이가 바꿔주었는데,
거기서도 여자 애 하나 손을 안 내놓자
그때 은결이가 다가가 현준한테 손을 내밀었지요.
그 은결이, 천천히 하고 싶은데 손잡은 아이들의 속도가 좀 빨라
춤명상이 조금 아쉽기도 하더라나요.
다녀갔다고 그 질감을 좀 안다 이 말이지요.
‘물꼬에서 이렇게 조용한 춤명상을 하다니, 하고 많이 놀랐습니다. 심하게 장난치는 아이 없이 모두가 춤명상에 심취되어 있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호열샘)
‘민교가 안에 있는 원에 있는데 손 떼고 들어오는 동작에서 자꾸 너무 안쪽으로 들어와서 보빈이가 자꾸 막 민교한테 인상 쓰면서 짧게 너무 안쪽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데 너무 귀엽고 좀 웃겼고...’(재훈샘)
언니 노릇하느라 그런 게지요.
‘춤명상 할 때 항상 느끼지만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어서 좋고...’(새끼일꾼 윤정)
‘춤명상만 하면 그냥 자동으로 멍해진다. 머리에 아무 생각도 안든다. 이런 게 춤명상의 매력 아닐까. 음악 선택이 끝내주십니다, 옥샘.’(새끼일꾼 동휘)

모둠 하루재기.
보빈이가 준근이의 글씨쓰기를 돕습니다.
그렇게 아이들 또한 아래 아이들을 돌보며
엿새를 보낼 것입니다.
씻은 뒤 샘들이 읽어주는 동화책을 읽으며 잠자리로 간 아이들입니다.
야뇨증이 있는 한 아이, 그 때문이기도 했고 처음이기도 해서 그러했을 텐데,
쭈빗쭈빗하더니 이번에 와서는 아주 기고만장이랍니다.
새벽 1시, 오줌을 누이러 갔을 때도
컸다고 벌떡 금새 일어나던 걸요.
일곱 살 권세현은 엄마 보고프다 한번 울었습니다.
품에 안고 노래도 불러주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새 잠이 들었지요.
날마다 조금씩 수월해질 테고,
그 시간 아이도 그리 훌쩍 자랄 것입니다.

샘들 하루재기.
‘다 같이 마지막이랑 나 홀로 마지막이랑 느낌이 다르다.
너무 아쉽고 아이들이랑 친해져서 가기도 너무 미안하고 슬프다. 내일이 마지막인데..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다 후회된다.’(새끼일꾼 윤지)
윤지 형님은 지난 계자에 이어 틀을 잡는 시작만 살펴주고
돌아가야 합니다.
이 아이들을, 이 쌓인 일들을, 이 사람들을 두고 갈 일이 태산이라지요.
계자를 바로 그렇게 마음 쓰는 이들과 꾸리니
늘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겠는지요.
“청소년 계자 때는 몰랐는데 물꼬에는 정말 일이 많구나 싶었어요.
수현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걸 보는데...”
처음 계자를 하는 유진샘은
그 속에 자신의 동선을 배우게 되더라 합니다.
새해 열여섯이 되는, 초등 3년부터 이곳을 드나들던 수현이
이번에는 샘들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관장하는 역을 하고 있습니다.
‘바람도 쐴 겸해서 나갔는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내가 사는 곳과 다르게 이곳 대해리는 공기가 맑은 것 같다.’(새끼일꾼 창우의 하루 정리글에서)
그것만으로 이 아이들이 얼마나 순순해질지요.
우리 어른들도 그렇듯이 말이지요.

그런데, 불이 애를 좀 멕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굉장한 저기압 때문일까요?
기름으로도 잠깐 일뿐,
어제처럼 불이 잘 들지를 않습니다.
그러하니 방안 온도가 쉬 오르질 않았겠지요.
아이들이 좀 춥다 합니다.
쉬울 것 같지 않은 계자일 것만 같습니다.
다행히 석유난로가 큰 도움입니다.
공기를 데우고 좀 지나서야 방바닥 따숴지고 있었지요.
“제가 팔팔하니 이제 불을 볼게요.”
새벽 2시, 호열샘이 뒤란 아궁이 앞으로 당장 달려갔더랍니다.
그렇게 마음을 내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고
그 마음결들로 아이들이 더욱 순순해지다마다요.

이번 겨울은 오지 못한 새끼일꾼들과 품앗이일꾼들의 마음이
이곳에 많이 머무나 봅니다.
물꼬가 외가인, 곧 대학을 가는 보육원 아이 하나,
그곳에서 온 아이들 편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오랜 세월 물꼬를 드나들며 자신을 키워왔다 하고,
이제 머잖아 힘을 좀 보탤 수 있겠다 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마음들이 물꼬를 밀고 갑니다.
그런 마음결이 모여 물꼬를 오가는 아이들에게로 내리 흐를 테구요.

방이 따스해져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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