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계자 나흗날, 2011. 1.12.물날. 간밤 눈 내리고, 맑게 갠 아침


발목 푹푹 빠지는 산마을 눈길을 걷습니다.
오늘 해건지기의 아침수련과 수행은
칼바람 속의 바깥걷기랍니다.
달골까지는 너무 먼 아침이지요.
내일 산오름도 있으니 좀 접어도 좋겠다 싶습니다.
하여 달골 오르는 계곡 위쪽 작은 공터에서 아침을 열었습니다.
떠오른 해보며 새해아침처럼 바램도 빌지요.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소망이 더 많았던가 보지요.
더 진지했던 샘들이었더이다.

함께 걷는 길은
안에서만 본 아이들을 다른 장소에서 읽게 하고,
한편, 안에서와 다른 관계들 속으로 서로 엉겨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말을 섞어보지 않은 이랑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침 인사를 하게도 되지요.
기독교적 신념이 너무나 강했던 한민지는
어제 명상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같이 눈길을 걸었더랬지요.
이곳에서의 명상이 어떤 의미인지,
그건 단지 평화에 이르려는,
혹은 자신의 마음을 훈련시키려는 한 방법일 뿐임을,
그것은 종교랑 전혀 관계 없음을,
그리고, 내 종교가 인정 받으려면 타인의 종교 또한 인정해야함을,
슬쩍 흘렸더랍니다.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요.
“잘 한번 생각해보고 그래도 불편하다면 굳이 안 해도 된단다.”
그럼요, 그럼요.

“배고파...”
은섭이입니다.
깰 때부터 배고프다던 은섭이,
기어코 돌아오는 길, 그예 아주 벌러덩 누웠습니다.
놀래서 달려가봅니다.
그저 배가 고파 그러하답니다.
샘들이 업고 오지요.
빵과 수프와 샐러드가 나오는 아침입니다.
은섭이는 두 배로 먹었더랍니다.

손풀기 마지막 시간입니다.
어떤 이는 같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연습이 되어 쉽더라지요.
또 어떤 이는 그와 반대로 복잡해지더랍니다.
그러게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니
더 많이 봐지더란 말일 테지요.
그림은 짧은 사흘에도 변화가 아주 큽니다.
적어도 이 시간을 보낸 모두는
나, 그림 못 그려요,
그렇게 말하진 않게 될 겁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면 될 테니까요.
그래서 누구나 예술가인 게지요.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에게 명상하는 한 순간 되었더랍니다.
그렇게 때로는 고요함이 우리를 적시게 놔둘 필요가 있습니다.
밖으로 내는 에너지도 중요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내면을 강건케 하지요.

마을 건너 눈썰매장에 갔습니다.
꽁꽁 얼어, 눈보다 얼음의 힘이 더 큰 때입니다.
적이 걱정도 되었지요.
엄청난 속도를 불러올 테니까요.
샘들이 단단히 각오를 합니다.
아이들이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온 힘을 써얄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이었지요.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무지 무지 신나게들 돌아왔습니다,
단단히 얼어 번들거리는 썰매장을.
아, 성빈이가 사람과 부딪힌 일은 있었군요.
가벼운 피였습니다.
‘물꼬에 와서 눈썰매를 처음 타봤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경사도 심하고 속도가 너무 빨라 애들을 막기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특히 조금 큰 아이 같은 경우에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것 마냥 무서웠습니다. 일곱 살 권세현이는 어려서 처음에는 보호자 동반해서 탔는데 마지막엔 혼자 탈 정도로 어린 아이부터 큰 아이까지 재미있게 즐겼습니다.’(호열샘의 하루 갈무리 글에서)

틈이 있으면 아이들이 눈 덮인, 그리고 언 마당으로 나옵니다.

공을 차지요.

장관입니다.

정토가 거깄고, 극락이 천국이 거깄습니다.

 

점심을 먹고 속틀에도 없는 구들더께가 이어지고,
그리고 ‘미술놀이와 음악놀이가 함께 있는 연극놀이’.
무엇을 할까,
무려 열도 넘는 동화와 옛이야기 등장했지요.
그것의 줄거리를 정리하며 이야기마당 이어지고,
결국 저학년들이 많다고 형님들이 한 배려였던 걸까요,
절대적으로 ‘아기돼지삼형제’에 생각이 모였더랍니다.
모둠들이 각 장면을 만들러갈 적
가마솥방에선 호떡이 구워지고 있었고,
커다랗고 두툼한 호떡을 참으로 먹고들 시작했지요.

과정이 연극입니다,
종합하고 정리해서 무대에 올리기는 하지만.
분장으로 이미 연극 한편이고,
소품을 만들며 의상을 고르며 무대배경을 그리며도 그러합니다.
돼지꼬리가 달리고, 머리띠로 돼지 귀를 만들고,
이름표를 달아 배역을 알리기도 하고,...
“옥샘, 늑대발 좀 잠깐 빌려주세요.”
제 털신을 눈여겨보았던 한 모둠에선
마침 그걸로 늑대소품을 대신합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아이들,
신통방통하지요.

펼쳐보이기.
공연을 앞둔 아이들의 긴장이 예—Ÿ니다.
보는 이들에게야 완성도가 떨어질지 모르나
조명이며 음악이며 그리고 무대를 장악한 아이들이며,
분장은 어이 저리도 귀여운지요,
엄청난 규모의 공연이었답니다,
그 짧은 한 시간 안에 말이지요.
‘여러 명의 의견을 한꺼번에 수렴한다는 게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성질 꾹 누르면서 하니까. 아이들도 잘 따라와서 나도 뿌듯했다. 영욱샘의 발연기는 그야말로 백미.’(새끼일꾼 동휘)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샘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엿보이지요.
샘들의 투혼(?)으로 완성되는 연극이랍니다.
샘들은 의견을 모으느라 인내심을 기른 시간이었다나요.
허나, 아이들이라고 달랐을까요,
다른 이들과 조율하며 마찬가지였을 겝니다.
성희샘이 천만 관객 대표로 왔네요.
“3모둠이 첫 번째로 나왔는데, 한껏 분장하고 시끌벅적 나와서 한 장면을 모두가 연출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 안에서 순간의 모습은 가볍고, 가볍다는 건 연극이 어려운 게 아니라, 무거운 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건데...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과 꼭 어떻게 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깨주었습니다.”
샘들 하루재기에서 한 성희샘의 연극관람평이었지요.
‘이번 연극놀이 진짜 재미있었다. 동그랗게 모여서 다툼도 하지만 그래도 모여서 토론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또 결말도 쫌 바꿔서 하는 재미도 있었고 대사 같은 것들은 애드립으로 하자고 했는데 다들 너무 잘해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하다! 여장했는데 진짜 예뻤다. 뒷정리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새끼일꾼 윤정)

삭신이 쑤십니다.
몸살감기이겠습니다.
어깨를 앓아오고도 있었습니다.
아들을 불러 안마를 부탁합니다.
아, 그렇게 잤으면 딱 좋겠습디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 모였다고 교무실로 부르러왔습니다.
아이들 앞에 갑니다.
“자, 어깨 펴고...”
그리고 그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 됩니다.
몸이 다시 돌아옵니다.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이 순간들이 경이입니다.
그렇게 한데모임을 시작합니다.

낮에 동현이가 슬며시 다가와 말했습니다.
“옥샘, 오늘 노래 꼭 배워요, 우리가락. 내일은 마지막날이니까...”
손말을 하고,
우리가락을 그렇게 시작했지요.
신민요 하나를 어제에 이어 배웠습니다.
손장단을 고대로 따라하며
아이들이 소리를 그리 만듭니다.
신기하지요, 참 신기합니다.
이들의 배움을 정녕 놀랍습니다.
어제 오늘 그렇게 금방 노래 하나 완성했지요.

내일 산오름을 위한 안내도 합니다.
가지 말자는 말이 대세이더니
차츰 결국 가는 구나로 체념하고,
이어 어떻게 갈까로 분위기가 모아집니다.
‘아이들, 진지하게 듣고, 마음을 내고, 걱정하지만 집중해서 듣는 순간이 좋았습니다. (아이들에게)각오가 되었습니다.’(성희샘)
종찬이는 산이 아주 걱정입니다.
그러나 잘 할 수 있을 겝니다.
“도와줄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우리는 산을 갈 것입니다.
저 눈 쌓인 산을 왜 우리는 굳이 가는가,
우리는 그 대답을 메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계자마다 여러 곳에서 대안학교 아이들도 모입니다.
그 아이들이 지닌 공통된 몇 가지 특성들이 있습니다.
가끔 그 아이들이 바람직한 가치관이라는 것에 너무 세례 받고 있어서
때로는 감동을 잃고 있음을 봅니다.
빈곤이라든가 세계의 중요한 문제들을 공유하고는 있으나
그런 정보들 혹은 교육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더 이상 감동 없이 그런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의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
더러는 그것이 과하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제도학교에 대한 비아냥 혹은 무시와 함께 그것이 존재하지요.
가끔 진보적인 사람들이 비진보적인 이들을 향해 갖고 있는 경멸 같은 것을
그 아이들에게서 발견하고는 합니다.
대안학교를 두루 다닌 어느 샘의 표현을 빌면,
내가 좀 안다,
그런 건방을 만난단 말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을 내서 좋은 기운을 만드는 이곳에 대해서도
너무 많이 알아서 잔잔히 이곳의 질감을 헤아리고 받기보다
민숭민숭 그냥 떠나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이지요.
정녕 대안학교의 교육이란 게 무엇인가,
그렇게 잘난 놈들 키우자고 하는 것인가,
곰곰이 곱씹어보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방식도 퍽 강성들인데,
훨씬 더 부드럽게 사람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바뀌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대안학교에 대해 가지는 편견 한자락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설아동들이 너무 거칠게 저들끼리 싸웁니다.
거기 다른 아이들이 섞이기도 하지요.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오직 안아주리라 합니다.
저는 그것보다 더한(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또, 고학년 여학생들의 집단성이 드디어 여기서도 문제를 부릅니다.
제도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사들이 호소하던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였지요.
오늘 밤엔
잠자리에서까지 자고 싶은데 시끄러워 못자겠다는 원성까지 나왔네요.
아고, 저 패거리문화를 어이할지요?
샘들한테 좋은 숙제가 되고 있습니다.

재훈샘이 면접을 보러 갈 일이 있었고,
그 자리로 유정샘 급히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손발 나누며 갑니다, 여기.
고마운 사람들이고,
그들이 만든 기운을 아이들 속에 잘 스미게 하고픕니다.
기꺼이 이 산골 모진 추위 속으로 달려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이 젊음들이 내는 긍정의 기운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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