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눈밝힘 9 - 돕는다는 것

조회 수 4119 추천 수 0 2004.07.19 11:36:00
왜 가을을 짙다도 아니고 깊어간다고 했는지
그만 다 이해할 것 같은 대해리 골짝의 가을날입니다.

어려운 시절이라 하네요.
그렇기로야 보릿고개만 할까 싶지만
이 시절을 겪는 현재형으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때인가 봅디다.

얼마 전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오랫동안 논두렁으로 달마다 적다할 수 없는 후원회비를 보내오던 곳입니다.
웬만한 중소기업 못지않은 건축사무소지요.
경기가 안좋아서 사업이 힘들고 그래서 잡비를 줄이고 있다 했습니다.
논두렁에 심던 콩을 거두어먹는 것도 못보고
막연한 훗날을 기약하셨습니다.

지난 여름 끝은 한 고아원에서 온 아이들만으로 계절학교가 열렸습니다.
97년 1월 거제도 다대에서 그곳 아이들을 위한 계절학교를 따로 연 것 말고는
한 단체(?)를 위해 공간을 마련한 것은 없던 일이었지요.
계절학교에서 고아원이나 저소득층 아이들을 일정 비율이상 섞기는 해도.
까닭인즉슨 그 고아원에서 이러저러 가던 캠프들이 있었는데
올해는 다들 어렵다고 받기 어렵다 했답니다.

그 전에도 그랬습니다.
오랜 인연을 맺은 고아원과 장애인 시설이 있는데
저로서는 불경기란 걸 그곳에 가면 느낄 수 있었지요.
살기가 힘들면 후원금부터 줍니다.
기업들이 혹은 개인이 잡비를 줄인다는 거지요.
지들 월급은 안깎을 것 아냐,
슬쩍 그리 투덜댄 적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후원회비라는 게 그렇습니다.
잡비 항목이라는 거지요.
누구에게는 생존이 걸린 밥상이
누구에게는 투덜거림의 대상에 불과하듯
생존의 문제가 다른 이에겐 그저 지출을 줄이는 첫 번째 항목에 들어가 있습니다.

크면 돈 많이 벌어서 고아원도 세우고 싶어요,
우리 아이들, 희망이 없다는 시대에도 더러 그런 꿈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쯤의 세대로서는 어릴 적 그런 꿈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겠지요.
나중에, 노후에 말입니다, 고아원 차리고 싶습니다,
그런 어른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은 않지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다 '나중'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라.
아이들이 지금 배고파 쓰러지고 아파서 쓰러지는데...

나눈다는 것 말입니다,
그거 뒷날에 내꺼 다 갖추고 난 다음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서 나누는 것,
바로 여기에서 나누는 것,
그게 정녕 나눔 아닐런지요.

남을 돕는다는 거요,
그거 내가 줄 수 있는 게 출발이기는 하겠으나
그 쪽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고민하고 돕는 게 정말 도움입니다.
생색이 아니라 정말 도움이 되고 싶다면 말입니다.

섬김과 나눔이 이 사회의 적지 않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변함없이 생각합니다.
저희에게 보내는 것은 줄이더라도 혹은 보낼 수 없더라도
다른 곳에, 그것이 어데선가 먹고 사는 일에 걸린 보탬이라면 더구나, 후원이란 걸 하신다면
부디 그 일이 계속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학교를 세우는 일은 먹는 것 다음 일이 아닐지요.

(200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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