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날 그대의 보물은 어디에 있었나요 >

옥 영 경


기른 정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한 아이의 성장사에 고스란히 개입하면서
그 아이에게 붙은 햇살 바람 풀잎들을 되내일 수 있다는 뜻일 겝니다.
오래고 질긴, 함께 한 생에 대한 찬사를 일컫는 말.

제게도 아이들이 있지요.
한 녀석은 뱃속에서부터 함께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이었을 거예요.
너무 더운 오후 아버지랑 그늘을 찾아 나들이를 갔던 세 살 아이가
엄마 엄마 부르며 좇아왔습니다.
주머니를 뒤적입디다.
작아서 더 예뻤던 돌 하나와 푸른 꿈같던 잎사귀 하나를 내밀었지요.
“엄마, 선물이야.”
이모들이 재워주고 있던 아이가
장구를 치거나 강의를 다녀오던 엄마의 들어오는 기척에 벌떡 일어나
벗어놓은 제 바지 주머니에서 내밀던 어린 풋감, 이상한 스티커, …
도대체 별 소용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늘여놓기에 아름다울 것도 없는 것들을
아이는 날을 거르지 않고 주머니에 채워 왔더랬지요.
친구네에서 맛나게 얻어먹은 과자 하나를 엄마 위해 남겨왔던,
그만 다 부스러져 있던 선물하며.
어제는 일곱 살이 된 이 녀석이 읍내 나서는 엄마를 부릅니다.
할아버지랑 삼촌들이랑 포도나무 가지를 치고 왔지요.
저는 포도밭 가에서 냉이를 캤던 모양입니다.
냉이는 이모가 받아 부엌으로 들어갔는데
제 주머니에서 또 뭔가를 꺼냅니다.
“뭔데?”
“냉이! 되게 굵지요?”
정말 통통한 도라지뿌리 같습니다.
흙이 묻었을 땐 더 실했는데 씻고 벗기며 가늘어졌다 합니다.
“그래도 굵지요? 엄마 거예요.”
시카고에서 보낸 어느 겨울,
스케이트장을 간 날이었더랍니다.
차에 남아있는 엄마한테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괜찮겠어요, 무섭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보내고 지가 남아있을까 묻습니다.
“엄마가 쪼끔 하면 주머니에 넣고 갈 텐데….”
아, 주머니!
예, 우리 어린 날 모든 보물이 들어가던 주머니 말입니다.
잘그락거리는 구슬들을 주머니에 넣고
안 먹어도 배부르던 저녁 답의 아이는
혹 그대의 어릴 적 한 모습 아닌지요?
딱지처럼 껌종이를 싸그리 땄던 날 저녁은
주머니를 움켜쥐고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지 않던가요.
어릴 적 그대의 보물창고는 바로 그 주머니 아니었더이까.

그래요,
아이들은 주머니가 있는 옷을 입혀야 합니다.
그들은 쉴새없이 보물을 찾아대니까요.
그 보물을 넣을, 이왕이면 큰 주머니가 꼭 있어야겠지요.
달랑거리는 지갑이 아니라
몸에 전대처럼 착 달라붙어있어서
놀다 보물을 잃어버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주머니!
오늘은 아이들 옷에 주머니가 다 달려 있는지
잘 살펴야겠습니다.
없는 거요, 달아 주어야지요.
재봉틀 앞에 앉아보는 오늘이 되소서,
아이의 보물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그대.

(2004.03.04.나무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75 배움 八玄秘訣/11,돈(頓)에 대하여 imagefile 물꼬 2009-05-02 4280
74 길눈밝힘 7 - 살색을 아시나요 file 물꼬 2004-07-19 4296
73 배움 八玄秘訣/1, 열면서 imagefile 물꼬 2009-05-02 4305
72 배움 八玄秘訣/ 2, 팔현비결의 진리 imagefile 물꼬 2009-05-02 4309
71 농사 겨울철 원기충전을 위해 먹으면 좋은 “감 & 곶감” 물꼬 2009-02-16 4314
70 배움 八玄秘訣/14,돈을 할 때에는 imagefile 물꼬 2009-05-02 4314
69 농사 효소 만드는 법과 효능 물꼬 2008-10-28 4345
68 월리엄 코퍼스웨이트의 < A handmade life > 물꼬 2008-10-19 4348
67 배움 八玄秘訣/3, 팔현의 진리를 응용한 서법 imagefile 물꼬 2009-05-02 4349
66 배움 八玄秘訣/16,역행 imagefile 물꼬 2009-05-02 4372
65 길눈밝힘 11 - 집안으로 자연을 들이는 슬기 file 물꼬 2004-07-19 4379
64 공동체 포럼: ‘2013 인문정신문화 포럼-인문학운동의 현재와 미래’ - 옥영경 file 물꼬 2014-09-03 4421
63 사회과학과 철학 사이 - 김경동 물꼬 2008-09-28 4429
62 배움 八玄秘訣/18,주(住) imagefile 물꼬 2009-05-02 4462
61 <안티쿠스> 휴간에 부쳐-사회과학과 철학 사이를 읽고 물꼬 2008-10-21 4466
60 배움 八玄秘訣/23, 점(点), 일(一), 영(永) imagefile 물꼬 2009-05-02 4475
59 배움 八玄秘訣/20,돈(頓) imagefile 물꼬 2009-05-02 4482
58 길눈밝힘 12 - 일하는 아이들 file 물꼬 2004-07-19 4512
57 농사 월별 효소 재료 물꼬 2009-08-26 4523
56 ...젊은 청춘들에게 바친다-박상필 물꼬 2008-09-28 452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