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눈밝힘 16 - 보름달 그이

조회 수 4027 추천 수 0 2008.09.11 20:39:00
* 한가위입니다.
제게도 남아있지 않은, 몇 해 전에 쓴 글을
지니고 계시다 오늘 챙겨 보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고맙고 감사함으로 늘 세상을 살아갑니다. (2008.9.11)


< 보름달 그이 >

옥 영 경


달도 없는 칠흙같은 밤이 엊그제이더니
빤히 올려다보는 갓난 아이의 눈같은 보름달입니다.
한가위네요.
그대의 기쁨도 저러하였는지요?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대청마루 끝 쪽파를 다듬던 할머니 곁에서
어린 날 그리 흥겹게 불렀더랍니다.

더러 서러운 날도 있었더라지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강에 빠진 달에 설움을 얹어 하염없이 보기도 하였더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우리 마을 비춘 달아,
강강술래 가운데서도 처음 걷는 놀음에서
그리 마음 맞춰 아이들과 놀던 날도 많았더라지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세월을
저 달은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며 살았을 테지요.
홀쭉한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었다가 다시 그믐달이 되는,
<작은집 이야기>(버지니아 리 버튼)의 한 장면은 숨을 멎게도 하였습니다.

“어둠 돌돌 말아 청한 저 새우잠//
누굴 못잊어 야윈 등만 자꾸 움츠리나”
어느 시인이 노래했던 초승달입니다.

돛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는
가기도 잘도 갔댔지요.
반달은 그런 노래로 아이 아니어도 삶 한켠 큰 자리였습니다.

“어느 애벌레가 뚫고 나갔을까/
이 밤에 유일한 저 탈출구,//
함께 빠져나갈 그대 뵈지 않는다”
또한 보름달이 가슴 물결 이게 한 게
어디 이 시인만이었을라구요.

기울거나 차거나,
내 눈에 뵈는 건 그 이름이 달라도,
달은 여전히 저 우주 속에 둥글게 둥글게 돌고 돌았을 것입니다.
가렸을 뿐
그는 온전히 변함없이 보름달인 게지요.

그랬겠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그이도 보름달이었겠습니다.
그가 삐뚤게 보이는 건 '내'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보름달인 그가
다만 내 눈에 차고 기울게 보였을 뿐.

보름달인 그대여,
사랑합니다!

(2004.9.28)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35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류옥하다 file 물꼬 2009-04-20 5276
34 배움 첫 등산을 위하여 물꼬 2009-09-14 5308
33 만일 물꼬 2010-02-17 5428
32 배움 八玄秘訣/24,팔현비결의 차레대로 적은 모양세 imagefile 물꼬 2009-05-02 5475
31 배움 八玄秘訣/12,역기(逆起)와 돈(頓)까지가 어렵다. 물꼬 2009-05-02 5560
30 배움 八玄秘訣/17,역행(力行) imagefile [1] 물꼬 2009-05-02 5594
29 공동체 포럼: ‘2013 인문정신문화 포럼-인문학운동의 현재와 미래’ - 옥영경 file 물꼬 2014-09-03 5597
28 공동체 생태공동체와 교육에 대하여 - 이병철 물꼬 2003-02-08 5717
27 <흰 지팡이 여행>(에이다 바셋 리치필드/사계절)을 읽고/류옥하다 물꼬 2009-05-25 5770
26 배움 자동차 보험료 아끼는 요령 물꼬 2011-02-24 6043
25 배움 또 하나의 저항방식 - 옥영경 옥영경 2003-02-08 6081
24 공동체 화내는 기부자에게 슬기롭게 대처하기/최영우 물꼬 2011-10-29 6087
23 공동체 브루더호프 물꼬 2008-11-05 6259
22 길눈밝힘 14 -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file 물꼬 2004-07-19 6286
21 농사 2009년 월별 농사 계획-농림수산식품부 물꼬 2009-03-13 6433
20 배움 삶이 왜 이렇게 힘드냐고 묻는 아이에게 물꼬 2010-09-07 6544
19 농사 풀과 나무를 발효시켜 '효소'와 '반찬'과 '닭모이' 만들기 물꼬 2009-01-24 6811
18 독자의 권리/다니엘 페나크 물꼬 2010-02-25 6933
17 <노 임팩트 맨>(콜린 베번/북하우스/2010) / 류옥하다 물꼬 2011-09-07 7051
16 배움 八玄秘訣/ 8,영자팔법'과 '팔현비결' imagefile 물꼬 2009-05-02 713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