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한가위 되소서

조회 수 1829 추천 수 0 2008.09.11 20:34:00

< 보름달 그이 >

옥 영 경


달도 없는 칠흙같은 밤이 엊그제이더니
빤히 올려다보는 갓난 아이의 눈같은 보름달입니다.
한가위네요.
그대의 기쁨도 저러하였는지요?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대청마루 끝 쪽파를 다듬던 할머니 곁에서
어린 날 그리 흥겹게 불렀더랍니다.

더러 서러운 날도 있었더라지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강에 빠진 달에 설움을 얹어 하염없이 보기도 하였더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우리 마을 비춘 달아,
강강술래 가운데서도 처음 걷는 놀음에서
그리 마음 맞춰 아이들과 놀던 날도 많았더라지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세월을
저 달은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며 살았을 테지요.
홀쭉한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었다가 다시 그믐달이 되는,
<작은집 이야기>(버지니아 리 버튼)의 한 장면은 숨을 멎게도 하였습니다.

“어둠 돌돌 말아 청한 저 새우잠//
누굴 못잊어 야윈 등만 자꾸 움츠리나”
어느 시인이 노래했던 초승달입니다.

돛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는
가기도 잘도 갔댔지요.
반달은 그런 노래로 아이 아니어도 삶 한켠 큰 자리였습니다.

“어느 애벌레가 뚫고 나갔을까/
이 밤에 유일한 저 탈출구,//
함께 빠져나갈 그대 뵈지 않는다”
또한 보름달이 가슴 물결 이게 한 게
어디 이 시인만이었을라구요.

기울거나 차거나,
내 눈에 뵈는 건 그 이름이 달라도,
달은 여전히 저 우주 속에 둥글게 둥글게 돌고 돌았을 것입니다.
가렸을 뿐
그는 온전히 변함없이 보름달인 게지요.

그랬겠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그이도 보름달이었겠습니다.
그가 삐뚤게 보이는 건 '내'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보름달인 그가
다만 내 눈에 차고 기울게 보였을 뿐.

보름달인 그대여,
사랑합니다!

(2004.9.28)

* 한가위입니다.
제게도 남아있지 않은, 몇 해 전에 쓴 글을
지니고 계시다 오늘 챙겨 보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고맙고 감사함으로 늘 세상을 살아갑니다.
풍성한 한가위이소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후원] 논두렁에 콩 심는 사람들 [13] 관리자 2009-06-27 33150
공지 긴 글 · 1 - 책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한울림, 2019) file 물꼬 2019-10-01 16639
공지 [긴 글] 책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옥영경/도서출판 공명, 2020) file 물꼬 2020-06-01 14689
공지 [펌] 산 속 교사, 히말라야 산군 가장 높은 곳을 오르다 image 물꼬 2020-06-08 14173
공지 [8.12] 신간 <다시 학교를 읽다>(한울림, 2021) 물꼬 2021-07-31 14041
공지 2020학년도부터 활동한 사진은... 물꼬 2022-04-13 13730
공지 물꼬 머물기(물꼬 stay)’와 ‘집중수행’을 가릅니다 물꼬 2022-04-14 13796
공지 2022 세종도서(옛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선정-<다시 학교를 읽다>(옥영경 / 한울림, 2021) 물꼬 2022-09-30 12683
공지 [12.27] 신간 《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 (한울림, 2022) 물꼬 2022-12-30 10915
공지 2024학년도 한해살이;학사일정 (2024.3 ~ 2025.2) 물꼬 2024-02-12 3158
183 [10/25~27] 10월 빈들모임 file 물꼬 2013-10-07 1377
182 163 계자 영동역 일정 변경 물꼬 2017-01-05 1376
181 [2.8~13] 2014학년도(~2015.2.28) 마지막 위탁교육 물꼬 2015-01-22 1376
180 “예술명상” - 제도학교 지원수업 물꼬 2017-03-31 1375
179 4월과 6월의 빈들 사진 물꼬 2014-08-03 1375
178 겨울에는, 어른계자는 쉬어갑니다. 물꼬 2015-11-13 1374
177 6월 빈들모임 마감 물꼬 2015-06-10 1374
176 2013 여름 계자에서 밥바라지를 해주실 분들을 기다립니다! file 물꼬 2013-06-21 1372
175 [4.21~23] 4월 빈들모임 물꼬 2023-03-20 1369
174 [~1.31] 토굴 수행 물꼬 2015-01-22 1369
173 [7.10~20] 가마솥방 바닥 공사 물꼬 2014-07-14 1368
172 160 계자 마감 물꼬 2015-07-29 1362
171 단식수행 말입니다... 물꼬 2014-10-31 1362
170 2014 겨울 청소년계자 마감! 물꼬 2014-12-24 1361
169 2월 빈들모임은 물꼬 2017-01-26 1359
168 [10.24~25] 10월 빈들모임 file 물꼬 2015-10-03 1357
167 이레 동안 단식수행 들어갑니다 물꼬 2014-03-05 1355
166 [10/16] 2013 인문정신문화 포럼 - 인문학 운동의 현재와 미래 [1] 물꼬 2013-10-07 1354
165 [1.21~25] 전화 연결 어렵습니다 물꼬 2017-01-21 1351
164 [2022.8.7.~12] 2022학년도 여름 계자(170계자/초등) 물꼬 2022-07-04 134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