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0.나무날. 맑음

조회 수 1010 추천 수 0 2011.02.02 10:42:32

 

 

면소재지에서 귀농인모임이 있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달에 한차례 셋째 주 쇠날에 하던 것을

이번부터는 나무날에 합니다.

농사 이야기 나누고, 서로 격려하는 자리이지요.

꼭 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이들은 아니지만,

시골 사니 자잘하게라도 들일이 꼭 있는지라.

지난 해 처음 그 자리 가서 그저 가벼운 친목모임이 아닌

각자 자기 사는 이야기(특히 농사정보)들을 숙제하듯 안고 와서 풀자 하였습니다.

“누구나 자기 얘기를 가장 잘할 수 있잖아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자리가 되어야

계속 모임도 오게 되지 않겠냐고 한 제안이었지요.

 

두어 해전 떠밀려 고향을 온, 나이 오십 넘어 된 이가 있었습니다.

“...서울보다 오히려 경제성이 있어야겠구나. 차만 해도 자기 차가 있어야 되고...”

그래도 면에서 주관하는 여러 사업들이 있어

일정정도의 경제활동은 했더랍니다.

“봄이 오면 산을 개간할 생각인데...”

그런데, 그 꼭대기에 개를 묶어두고 있다지요.

“매일 같이 먹이를 주러 가요, 정 붙일라고.”

산에 정을 붙이려고, 개를 그 산 위에 묶어두고

날마다 개밥을 주러 오르는 그의 눈길이 밟혔습니다.

“벌써 봄은 다가오는데, 맘 조급하고...”

아, 삶의 맨 얼굴을 만난 듯, 그만 숙연해져버립디다.

나이 칠십에 다 이른 한 분은 비닐하우스 개폐기가 꽝꽝 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소식을 전합니다.

“영상 2도면 녹으니까...”

그렇게 봄을 기다린다지요.

산골에서 겨울을 나는 일이 제게만 고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지요.

 

아이가 교무실에서 늦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탄이 들어가 있는 된장집에 자도 될 것이나

홀로 산길을 걸어갈 엄마를 위해 말이지요.

그 아이를 얼마나 의지하며 사는지...

같이 산길을 오릅니다.

온 얼굴이 다 얼얼했습니다.

기온 무지 내려간 모양입니다.

이 겨울 날마다 이렇게 산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예년 같으면 계자 끝내고 눈이 녹을 무렵까지

간장집에 불을 때고 지냈을 터인데,

이제 아주 달골이 집이 되었습니다.

달이 은빛가루를 내리고 있는 길 위에서

아이랑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는 일이 서툴고 어리석어

요새는 아이에게 해줄 말도 그리 없습니다.

어디 이명박이 문제이겠는지요,

내 안의 이명박이 더 문제인 걸,

누가 누구를 준엄하게 꾸짖겠는지요,

내 삶에 꾸짖음이 더 필요한 걸.

오르고 내리는 산길이

내 삶의 반성이고 단련이구나 싶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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