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4.달날. 눈 나리는 아침

조회 수 1168 추천 수 0 2011.02.05 01:11:20

 

먼 길 다녀왔다고 더딘 아침입니다.

하기야 그렇지 않더라도 아침이 느지막한 겨울 속이지요.

눈까지 내리니 낮이 오지 않겠는 굴 속 같습니다.

오후에 온다던 손님이 둘 있었는데,

확인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아니 올 수도 있겠습니다.

눈까지 이리 굵어지니 말이지요.

마을로 들어오는 차도 나가는 차도 통 없는 듯했지요.

 

지난 밤, 박완서 선생님 별세 소식을 들었습니다.

잊지 않고 있으면 나이 마흔에도 제 길을 가더라,

강의를 가서 제가 자주 들먹이는 선생님의 이력이셨지요.

22일 떠나셨다 합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계실 적 통화 한번 한 게

직접 맺은 인연의 전부이나

글쓰기에 대한 꿈을 다독여준 분이시지요.

이윤기 선생님, 이영희 선생님 이어

큰 어르신을 줄줄이 잃고 있네요.

 

개들이 짖습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아랫목을 찾아 들어간 뒤였지요.

마을 들머리 들어서기 전 경사진 길은

언 쪽이 아직 녹지 않고 있은 지 여러 날입니다.

그 위로 또 눈이 내리니

올라오지 못한 차를 그예 버려두고 걸어오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네 사람이 들어섭니다.

방송국 사람들입니다.

지난 해 류옥하다 선수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

여러 곳에서 촬영섭외가 있었고,

그 가운데 우리 규모에 적절한,

그러니까,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은 방송 하나 촬영했었고(OBS ‘멜로다큐 가족’),

그것 때문에 또 몇 곳에서 섭외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한 해 한 차례 50분 영상물,

이곳에서 원칙처럼 삼고 있는 것이지요,

환상을 심지 않을 만큼, 우리가 잊히지 않을 만큼.

그런데, 충북권에 촬영섭외를 오는 길 있다 하기

정말 궁금하다며 들러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간다 하기

그거야 무에 어려울까 했지요.

서로 어떤 인연을 또 맺을지 모를 일이지요.

촬영 거절을 다시 확인한 뒤 오십사 했습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바로 촬영일정을 짜는 것이었습니다.

지난번 매우 영향력이 컸던 한 프로그램에서

오지 말라는데도 와서 카메라를 든 일도 있었으니

아주 짐작 못한 일도 아니었지요.

눈길을 헤치고 달려

여기까지 낑낑대며 걸어온 것에 못내 미안함은 일었으나,

이곳의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었습니다.

하여 은행도 구워 깨서 먹고 한과도 먹고

곶감도 꺼내와 베어 물며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잘 노닐다 해지기 전 돌아들 가셨지요.

 

어려워도 정말 거절이 필요할 땐 그리하기,

새해에는 꼭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외려 무리하게 받아들여 곤란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이 산골까지 찾아오는 이들,

그 마음을 헤아린다고 무리하게 들여

처음에 어려움을 피해간 것이 외려 훗날 큰 갈등의 씨앗이 된 게

또 얼마나 여러 날들이었던가요.

 

물꼬의 오랜 논두렁 행운님 댁에서 설선물이 닿았습니다.

한과입니다.

집안에 아픈 분도 계신데,

두루 사람들에게 쓰는 그 정성에 늘 탄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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