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6.물날. 맑음

조회 수 1213 추천 수 0 2011.02.05 01:14:45

 

 

오랜 전 아이랑 공동체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적,

세 살을 넘어선 아이는 아직 오줌싸개였습니다.

뉴질랜드 어디께 한 공동체에서 다른 공동체로 옮겨가던 때

잠시 머물던 배낭여행자숙소에

유럽에서 온 젊은 처자 하나 거기서 일을 거들며 숙박비용을 대신하고 있었지요.

거기서 이틀을 몹시 아팠더랬는데,

그 사이 아이는 담요 두 개에 지도를 그렸고,

여행 중이라 옷도 넉넉지 않았으니

빨래를 하지 않으면 퍽도 곤란할 판이었습니다.

근데 그니가 그 빨래를 챙겨 빨고 말려준 일이 있었지요.

잊은 적이 없습니다.

 

외국인 친구 하나가 아파트에 물이 다 얼었습니다.

개수대엔 설거지가 쌓였고,

세탁기가 언지는 더 오래였지요.

쌓여있는 빨래더미...

겨우 속옷은 손으로 빨아 방 하나를 가득 깔아놓고 있었습니다.

읍내엔 빨래를 돌릴 수 있는 가게가 없습니다.

세탁소에 가서 하나에 3천 원씩 아쉬운 대로 해서 입고 있다 했습니다.

봄이 오려면 아직도 먼데 그걸 어찌 감당하려나요.

“내가 두 번은 못해도 한번은 해줄 수 있다.”

빨래주머니를 들고 옵니다.

딸려온 속옷을 삶고 색깔을 구분해 세탁기를 돌립니다.

그리하여 뉴질랜드의 빚을 한국의 산골에서 갚게 된 셈이었네요.

벗은 또 누군가를 위해 빨래를 하게 되는 날 있을 테지요.

고마운 마음은 그리 돌고 도는 걸 겝니다.

 

한전에서 전화가 올 만치 과도한 전기 사용을

도저히 그대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

흙집 온수기 물을 결국 다 빼기로 결정합니다.

더는 허투루 전력을 소비할 수 없지요.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은 뒷일을 남기는지요.

흙집을 짓고 얻은 것도 많았으나 그만큼 갖은 애도 먹고 있었습니다.

짓는 과정에서도 보름이면 한다는 일이

달이 지나고 심지어 어떤 부분은 해가 지나기까지 하였지요.

원래 집이란 게 고쳐가며 사는 거라지만.

이 산골서 참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이 중요하고,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성실이겠습니다.

한편, 이런 시간들이 아이에게 좋은 공부가 됩니다.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보다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걸 저가 더 잘 아는 게지요.

흙집과 뒤란을 여러 차례 오가며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 확인하더니

어찌 빼면 되겠다 최종 보고를 했습니다,

물론 기본이야 들어오는 거 막고 나가는 거 열면 될 테지만.

그런데, 그 물이 어마어마한 양이어

학교뒤란 뒷마을 댓마로 가는 길이 얼겄습니다.

큰일입니다.

내일 밝은 날로 일을 미룹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그렇게 타인을 고려한 결정을 할 때가 있지요.

그러는 게 맞지요, 아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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