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30.해날. 밤, 눈 날려

조회 수 1069 추천 수 0 2011.02.11 12:12:32

 

 

맑게 시작한 아침이더니

흐려지던 오후 끝에 어둠과 함께 눈 날렸습니다.

그래요, 눈 위에 또 또 또 눈이지요.

그래도 낼은 오전 지나면서 풀려 푹한 설 연휴 될 거라 하니

그리 깊은 눈은 아니겠습니다.

 

본관 뒤란에 덧댄 흙집 수돗물이 얼었습니다.

워낙에 벽이 두텁긴 하나

며칠 전 뜨거운 물을 다 뺐으니 찬물로 견디기 어려웠을 테지요.

봄 와야 새고 있는 벽체 공사를 할 수 있을 것인데,

아직 겨울 끝나기는 멀었습니다.

문제는 들어가는 쪽이 그대로 통로와 이어져 문이 없습니다.

그간 할 만한 두엇한테 부탁을 해보기도 했더랬는데

이러저러 그냥 지나치고

그러다 또 계자가 닥치고 닥치고, 그리고 겨울 와버리고 하였더라지요.

오늘 거기 거적대기를 달았습니다.

바닥으로 흐르는 관이 터지는 것보다야 보기 싫은 게 낫지요.

흙집으로 들어서는 문께,

그리고 흙집에서 아이들 뒷간으로 나가는 문 안쪽에

거적대기를 내려뜨렸지요.

그렇게 못 여덟 개를 박았습니다.

그거 하는 데도 별 궁리를 다하며 제법 긴 시간을 흘려보냈더랬네요.

소사아저씨도 와서 손을 더하고,

아이도 와서 못과 함께 박을 고무보호대를 잘라주고...

그런 일은 내 일이 아니거니 하고 지내왔던 모양입니다.

하겠는 마음이 중요하지요.

내 일이 되면 사람은 움직입니다.

날 퍽 춥기도 하였는데, 망치질 몇 차례에 맘이 다 든든하데요.

기어이 나무를 다루어 이 해가 가기 전엔 문짝을 내 손으로 달리라

결심 깊이 한 하루였더랍니다.

 

새 학년도에 새로 시작하려는 일 하나 있는데,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일입니다.

여기 사는 이에게든 오가는 이한테든

자꾸만 아쉬운 소리 건네며 사는 게 구차하여

직접 내 손으로 하리라 맘 먹은 일이 있지요.

그래서 한 곳을 기웃거리며 조언을 구하던 참인데,

‘글의 정황으로 보아,

산속 깊은 곳에서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힘들게

사시는 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분이 답글을 달며 서두에 그리 쓰고 계셨지요.

거기 제 댓글은 이러하였습니다.

‘서두를 읽는데, 그만 눈시울 붉어졌더랬답니다.

자기연민, 뭐 그런 게 일었던 거지요, 하하.

삶은 제게 늘 신비이고, 일상의 기적을 이 산골에서 날마다 체험하지만

특히 아이들과 만드는 시간들이 정토이고 극락이고 천국이지만,

가끔 사는 일은 고달프기도 하거든요.

며칠 전 한밤엔 주행 중 연료필터의 기름공급이 되지 않아 시동이 꺼지기도 했고,

오늘은 한 공간의 물이 얼어 바닥 보일러까지 얼어터질까 걱정인데 속수무책이었고,

저녁답엔 눈 위에 다시 눈 나리고, 바람은 온 골짝을 휘젓고...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 온 산골살이라지만,

사실 자립(경제적 의미가 아니라)과는 먼 삶이었습니다.

이젠, 정녕 자립할 때!’

그래서 봄을 더욱 기다린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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