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1.불날. 푹해진 날씨

조회 수 1141 추천 수 0 2011.02.11 12:14:55

 

 

날이 풀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설에 오가는 발걸음들이 훨 수월하겠습니다.

 

느리작한 아침,

아이는 묵어가는 손님들을 끌고 발 깊이 빠지는 눈길을 지나

달골 원두막에 올라 마을을 굽어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연들을 들려도 주고,

저는 저대로 푹해진 날씨에 걸음이 한껏 느려져

툭툭 부러진 낙엽송 잔가지에 붙은 꽃송이 같은 솔방울도 한참을 구경하고,

나무들을 틔우는 눈도 들여다보고,

다리 위에서 개울을 보며 오랫동안 발을 묶어도 두고...

 

풀린 계곡물소리에 눈 한참 줄 적,

커다란 오동나무에서 베어내린 굵은 가지 몇 보였습니다.

짐작컨대 포도밭을 넘어가는 가지를 그 주인네가 베고

딱히 쓰일만한 건 아니어 그저 버려둔 게 확실해보여

질질 끌어다 마당가에 놓았지요.

따라오는 손들에도 하나씩 엥겨 부탁도 합니다.

‘주변의 땔감용 나무라도 쉽게 구하실 수 있다면

거두톱 하나 구하셔서 적당한 길이로 잘라’

제 손으로 나무를 다루겠다고 공언한 뒤

시작을 어쩔까 길 몰라 할 때

어느 이가 던져주었던 그 첫마디를 굳이 좇지 않아도

이제 젤 굵은 게 지름 10센티는 족히 되는 나무도 생겼습니다.

늘 즐겨 말하는, 바로 ‘일상의 기적’이었지요.

봄이 오면 그게 무엇이 되려나요...

 

누굿하게 아침을 먹고

아이들은 눈썰매를 타러 다녀오고

어른들은 차를 오래 마셨습니다.

어제 와서 묵었던 강혜숙님 돌아가며

더 묵고 싶어하는 아이를 아침까지도 서로 어쩔까 싶더니

아이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온 아이가 남기로 하였지요.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에 아이를 맡겨두어 미안하다 합니다.

그런데도 두고 가고픈 마음 더 간절해보여

가벼이 그러십사 하였답니다.

 

집 아이랑 며칠 머물 아이랑 둘을 데리고 읍내를 나갑니다.

아이를 돌봐주고 이곳 살림을 살펴주는 몇 어르신들께

설인사도 넣습니다.

장도 보지요.

“확보한 고기가 얼마 없습니다!”

고기전의 아저씨 목소리가 컸고, 사람들은 줄을 섰습니다.

아, 구제역이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싶었지요.

물가가 아무리 올랐다 해도 설상은 차릴 것이고

그래서 사람 지나다니기가 쉽잖은 시장이었습니다.

가격들을 보며 아무래도 장을 보다 꼼꼼이 보게 되고,

덜 먹지 안 먹지 하게 됩디다.

 

밤엔 영화 하나 봤지요, 오기가미 나오코의 <카모메식당>.

영화 <안토니안스 라인><가족의 탄생>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장선정 샘도 그리워했지요.

언제가 같이 모계중심공동체, 뭐 그런 것에 대해

공감하고 꿈꾼다는 얘기 나눈 적 있었거든요.

대성당이 보이고,

수오멘린나와 하라까로 건너가던 배를 타던 곳,

장을 보고 배를 채우던 마켓광장 카우파토리,

에스플란데공원 끝의 까페,

아이랑 다녔던 골목골목, 그리고 함께 타고 다녔던 전차,

반가움으로 헬싱키에 대한 추억으로 아슴하기도 바빴습니다.

더하여,

식당주인의 여유와 따스함, 질긴 기다림, 일상을 헤쳐 나가는 힘은

바로 날마다의 합기도 수련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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