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물날. 맑음

조회 수 1292 추천 수 0 2011.02.11 12:15:45

 

 

섣달 그믐밤입니다.

자정이 되자 아이가 좇아 나가 종을 쳤습니다.

달려가 같이 서른셋을 쳤지요.

 

서른셋, 참 가슴 떨리는 숫자입니다.

그 나이에 이를까 싶었고,

그 나이에 이르면 뭔가 세상을 이해할 것 같았던 그런 나이,

그리고 문학에서 역사에서

성인, 혹은 성인에 가까웠던 이들에게 의미 깊었던 숫자,

가족사의 삶에도 자신의 삶에도 큰 사건이 함께 하기도 했더랬지요.

종루에서 새해 첫 새벽을 알리게 된 서른셋 타종은

언제적부터였던 걸까요?

조선시대 통행금지를 해제하고 사대문을 열 때

서른세 번 종을 치던 파루에서 온 줄이야 익히 알지요.

물론 이것은 불가의 삼십삼천에서 나왔다 했습니다.

제천을 크게 나눈 스물여덟하늘 가운데 욕계 육천이 있고,

그 욕계 육천 중 둘째하늘이 곧 제석천인데,

다른 말로는 도리천이라고도 하지요.

이 제석천이 권속으로 거느린 작은하늘이 동남서북 여덟 개씩 서른둘인데,

제석이 머문 중심의 제석궁, 즉 다른 이름으로 선견궁까지 합해

모두 삼십삼천이라 합니다.

한편, 불가에서는 보통 하늘을 가리켜 이십팔천이라 하는데,

인간계에서 제일 가까운 욕계 육천,

그 육천을 넘어가면 색계 십팔천,

이 스물네 하늘을 모두 넘어가면 무색계인 사천이 잇으니

합하여 스물 여덟 하늘이 되지요. 

제석천(帝釋天)은 사람이 갈 수 있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그러면 수미산 아래가 되는 건가요.

그러니까 수미산을 네 개의 땅이 받치고 있고

위로 사왕천과 도솔천을 포함한 스물여덟 하늘이 있으니

그 우짝으로 부처의 불국토가 있는 게지요.

그러고 보니 사대문을 닫던 인정의 스물여덟 번 타종도

여기서 유래했던 듯합니다.

어찌되었든 우리도 덩달아

현세에서 가장 먼 33천, 도리천까지 울려 퍼지라고

크게 크게 종을 쳤더랍니다.

 

오늘 아침도 달골계곡 다리 아래쪽에서

오동나무 베 놓은 가지 끌고 들어왔습니다.

봄이 오면 무언가가 될 테지요.

아이들은 지치도록 눈썰매를 타고 오고,

저녁엔 이들을 데불고 설음식을 장만했습니다.

“별 하는 것도 없으니까 손 많이 가는 고구마라도 잔뜩 해서...”

자루에 있던 고구마를 다 내놓고

아이 둘 마주앉아 불 하나 차지하고 반은 먹어가며,

기락샘도 그 곁에 불 하나 또 차지해서 광주리를 채워갔지요.

“해마다 고구마전은 아주 자기들 차지네.”

(어머니 없이 처음으로 먼 곳에서 자게 된 수현이도

턱 하니 맘 편히 놓고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족끼리 있는 설 연휴에

남의 새끼 남겨두는 게 걸린다던 그의 어머니였는데,

있어서 더 즐거운 설짬이었더랍니다.)

안 한다 안 한다 해도 전과 튀김만도 두 광주리 그득이었습니다.

고추와 쥐치 튀김,

고구마전, 오징어동그랑땡, 꼬치, 동태전, 두부전,...

그리고 콩나물이며 무나물, 고사리, 미역, 숙주, 시금치 나물들...

설은 화덕에서 온다니까요.

 

멀지 않은 곳에 귀농해 사는,

초대했던 50대 부부는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산자락 집의 물이 꽁꽁 얼어 여관방을 전전한다 하기

예서 같이 설을 쇠면 어떻겠냐 간곡히 부탁했더랬는데,

이곳이 사람 두루두루 드나들 수 있는 줄 아직 모르시기도 하여

설을 여염집에서 보내기 마음 편치 않았던 듯합니다.

서둘러 날이 풀리고 그래서 언 물들 녹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믐밤, 어디라도 불 환하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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