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4.쇠날. 맑은 입춘

조회 수 1170 추천 수 0 2011.02.23 11:49:42

 

 

설에 다니러온 아이 사촌들은

이 골짝 아이를 따라 눈썰매를 타러 갔습니다.

이럴 때도 이 산골살이가 어느 곳보다 부자지 싶지요.

곳곳이 놀이터입니다.

 

입춘입니다.

‘이번 겨울이 너무 길어요, 선생님.’

어느 이한테서 왔던 편지의 끝 구절처럼

그래요, 이 겨울이 참말 길었습니다.

세월 건너기가 힘든 이들과 더러 나누기도 했던 말처럼

길기도 한 겨울이더니

그예 봄이 온다는 전갈입니다.

고맙습니다.

아이 사촌들과 봄맞이 청소를 합니다.

 

사람이 기억이란, 믿어 의심치 않을 뚜렷한 기억조차

제 안에서도 얼마든지 움직여 사실을 벗어날 때가 많지요.

오래전 미시령이었던가 한 노시인의 신작 시집의 말미에 쓴 글도 그렇고,

일찍이 함께 한 시간은 동일했으나 서로가 하는 기억은 달랐던

<오! 수정>이란 영화도 대표적인 한 예였습니다.

기억이란 그런 겁니다.

그래서 첨예한 문제에 대해 그것에 기댄다는 건 분명 위험이 있습니다.

시작 말이 좀 거한 듯한데,

그저 ‘기억’이란 그런 속성이 있거니 말하고자 하였답니다.

책방에 <혼불>을 찾으러 들어갔다가 찾는 건 누가 빌려갔는지 뵈지 않고

사계절출판사 1985년판 아홉 권짜리 <임꺽정>이 보이기 연휴라고 손에 들었는데,

80년대 후반에 분명 읽었건만

2권 중반을 넘어서는 데도 답체 눈에 익지가 않았더랬네요.

“도대체 꺽정이는 언제 나온단 말야?”

그런데 그 꺽정이 갓바치 스승과 함께 백두산 들었을 적

게서 운총이와 천왕동이를 만나는 대목에서 한 줄 한 줄이 어찌나 선명한지,

분명 읽었더란 말이지요.

그 웅장한 백두산 인상이 깊기도 깊었던가 봅니다,

그리하야 지금 이 산골 들어와서 살기라도 하나 봅니다.

 

“형님이 꽤 심약해지셨소 그려.”

“속을 썩이며 한 세상을 약하게 지내려니까

맘이 한편으룬 약해지고 한편으룬 독해지네.”

꺽정이가 유년의 벗이었고 훗날 한 적당이 된 이봉학이와

그리 주고 받는 대목 있었더랬지요.

‘오호, 딱 그 짝일세,

속을 썩이며 한 세상을 약하게 지내려니까

맘이 한편으룬 약해지고 한편 독해진다.’

5권까지 읽으며 보지 않았던 밑줄을 게서 만났습니다.

“...임금이 영의정깜으로까지 치든 우리 선생님이 중놈 노릇을 하구

진실하기가 짝이 없는 우리 유복이가 도둑놈 노릇을 하는 것이

모두 다 세상을 못 만난 탓이지 무엇인가...”

“.. 양반의 세상에서 성명 없는 상놈들이 기 좀 펴구 살어 보려면 도둑놈 노릇밖에 할 께 무엇 있나... 유복이 같은 도둑놈은 도둑놈이 아니구 양반들이 정작 도둑놈인 줄 아네. 나라의 벼슬두 도둑질하구 백성의 재물두 도둑질하구 그것이 정작 도둑놈이지 무엇인가.”

그럼, 지금은 어떠한가요...

홍명희 선생이 일제 강점기에 썼던 글임을 다시 되내 봅니다.

지금 세상은 그로부터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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