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6.해날. 눈이 오려나

조회 수 990 추천 수 0 2011.02.23 11:53:33

 

 

밤엔 얼어 아직 미끄러운 길이긴 하나

연신 눈은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봄 오고도 달을 지나서까지 불을 때는 난로라 아직 연탄 일이 많은데

소사아저씨 설 쇠러 간 일자리를 살펴

기락샘과 류옥하다가 여러 곳 불이며 짐승들을 멕이고 있습니다.

아이는 독에서 퍼내온 쌀을

동쪽 개울 산기슭에다 흩뿌리는 것도 잊지 않지요.

날 모질었을 적 얼어 죽은 산비둘기 본 뒤로

더 챙기는 산짐승들이랍니다.

 

눈이라도 내리려는지 하늘 젖고 있었습니다.

어제 들어왔던 새끼일꾼 영화샘, 수민샘이랑

차를 또 얼마나 달였던지요.

사람들이 와 이리 고즈넉한 시간을 보낸 것도 오랜만인 듯했지요.

좋은 때 잘들 왔습니다.

뜨뜻한 데 들어 몸을 녹이기도 하고

살포시 잠에 스미기도 하고

설이라고 이것저것 집어먹기도 하고

그리고 이야기에 이야기를 쌓으며

즐거운 한 때였습니다.

이제 같이 나이 들어가는 벗들이라지요.

 

“선생님이 올리신 글을 보고 조금 울었어요.”

그리 시작한 글 하나를 받았습니다.

첫 문장에 읽던 제가 그만 눈물 방울졌지요.

살아가며

애는 애대로 쓰고 억울하고 분한, 얼토당토 않은 일을 만나게도 되지요.

달포 넘어 되도록 무거운 짐 하나 이고 있음을,

타인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문제라는 깊은 성찰 속을 걷고 있음을

그예 눈치 챘던가요,

워낙 행간을 잘 읽어내는 사람이어,

사람을 그리 살필 줄 아는 이어,

그만 속내를 들켜버렸구나,

마음 읽어준 게 고맙기도 하고

내 삶 무게로 저도 우울할까 하여 저어되기도 하고...

“요즘 저는 매일 화를 내요.”

제 어려운 시간은 그에게도 쉽지 않은 날들이었던가 봅디다.

두 번째 문단은 그리 시작하고 있었지요.

그래요, 세상 어느 편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겝니다.

점심 초대를 하고 비싼 소파에서 아이가 뛴다 야단친 큰 엄마한테,

밥하고 찌개 끓여 기껏 상 차려 놓았는데

치킨 시켜 먹고 싶었다고 궁시렁대는 애들 아빠한테,

만화영화에 컴퓨터 게임에

그러고도 심심하다고 투덜대는 아이한테,

경제적으로 제대로 자립도 못 하고 있는 자신한테,

딸네 집에 오며 행여 사위 눈치 보일까

오만가지 음식을 이고지고 들고 오는 엄마한테 신경질 나서,

화를 낸다 하였습니다.

“그 밖에 백이십 가지 이유로 화를 내면서 지내요.

당최 어찌하여 이러는지

이유를 찾을 새가 없이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 그 끝이 이번 겨울이 너무 길다는 말이었지요.

벗이 드러내준 마음과 구구절절한 일상의 사연과는 다르게

그의 글은 늘처럼 시(詩)가 되어

정작 제게선 이 사람 참 곱다,

그렇게 읽히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여도 사람 무늬는 그대로 그려지나 봅디다.

그가 퍽 보고팠습니다.

이렇게 주고받으며 힘을 받고 살아지는 거구나,

삶이 고맙고 말이지요.

 

그러나저러나,

이번 겨울이 참말 깁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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