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긴 덕에 수월하게 오고가기도 좋은 때여
참 여럿이도 다녀갔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락샘도 대해리에서 꼭 한 주를 머물렀지요.
모다 평화로웠습니다.
기락샘 나가는 편에 면소재지 갑니다.
지난 달 28일부터 묶여있던 짐들입니다.
겨울일정에 밥바라지한 샘이며 인사 해얄 곳들에 가는 것들,
애들이 놓고 간 것들,
그리고 농산물 두어 꾸러미도 실려 갔습니다.
전화를 신청하고 개통되던 때 같은 기분 잠시 스쳤습니다.
이리 적고 있으니
텔레비전을 넣고 안테나를 세우고
마침내 지지거리며 화면이 나오던 흑백시절도 겹쳐지데요.
택배 개통이었답니다.
열흘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날들인데
실시간으로 메일이 오고가지 않으면 불통이라 여기는 시절이라
예 삶도 어느덧 그리 물들었던가 봅니다.
밤늦게 전화통을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또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이가 물꼬 계자를 오면서 맺은 인연이
벗인 듯 가까워졌지요.
마음에 묻었던 얘기들을 전했습니다.
한참 고민한 것들입니다.
그저 내가 만난 며칠에 대한 관찰을 ‘보았다’며 말할 수 있는 걸까,
혹여 아이의 행동을 ‘지금 그러하다’ 보다 ‘문제’로 보는 건 아닐까,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말로 할 필요가 있을까,
모든 것이 그러하듯 다, 다 지나갈 것인데
내 맘이 좀 불편하였다고 마치 문제이기라도 한 양 호들갑은 아닐까,...
오랜 끝에 편하게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 들어서야 한 통화였지요.
내가 그 아이에게 진정 애정이 있는가,
그렇다는 대답 뒤이었습니다.
“걱정이 돼서 그런다.”
사실은 하나도 남 걱정 아니 하면서,
단지 내가 불편해서 그 꼴을 볼 수 없어 그러면서,
그렇게 시작하는 이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정말 내 새끼를 남들이 그리 걱정해 주는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얘기 기준을 ‘정말 내 새끼 걱정 내가 하듯 하고 있는가,
그거였더랍니다.
그 마음을 아시리라 기대며
이번 겨울의 그 아이 이야기를 했다지요.
가장 무거웠던, 겨울 계자 뒤 통화였답니다.
잘 받아주셨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결국 용기가 되었지요.
그래, 그렇게 아이들 얘기를 나누리라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