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 드디어 산을 흔듭니다.
아침을 한껏 맑게 합니다.
봄, 봄 그림자인 게지요.
벌써 열흘 남짓 되었을 라나요.
달골 가는 길 작은 계곡 하나 흐르고
그 위로 예닐곱 걸음 되는 다리 지나 아침저녁 오가는데,
풀린 계곡물소리에 눈 한참 줄 적
커다란 오동나무에서 베어내린 굵은 가지 몇 보였습니다.
짐작컨대 포도밭을 넘어가는 가지를 그 주인네가 베고
딱히 쓰일만한 건 아닌 듯 그저 버려둔 게 확실해보여
하루에 하나씩 질질 끌어다 마당가에 놓았지요.
학교 예제 손봐가며 살아가자면
나무부터 좀 다룰 줄 알아야겄다 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릴 적
‘주변의 땔감용 나무라도 쉽게 구하실 수 있다면
거두톱 하나 구하셔서 적당한 길이로 잘라’
그리 안내하던 글이 있더니
그렇게 늘처럼 만나는 ‘일상의 기적’이 찾아왔더랍니다.
그보다 앞서, 날 모질기도 했으나 맘이 바빠
‘우선...가장 먼저 기본적으로
낫, 자귀, 뺀치, 빠루 망치, 못, 숫돌, 거두톱, 연철사(반생이) 같은
기초적인 공구나 철물부터 준비하심이 어떨까...합니다.’시던 분 말씀 얼른 좇아
종이쪽에 일일이 적고 확인하고 챙겨 공구를 모아두기 먼저였지요.
이제 젤 굵은 게 지름 10센티는 족히 되는 나무도 있고
공구도 있고,
다음은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참인데
온갖 것을 밀쳐 넣어둔 비닐하우스(명색이 목공실인) 있어
조만간 그곳을 치울 참이랍니다.
물론 날 좋을 땐 마당에서 뭔가를 할 테지요.
하여 이 해가 끝날 쯤엔
목표로 삼은 문 세 짝을 그예 만들어 달았노라 글 쓸 날 오길
간절히도 바란다지요.
봄이 어느 때보다 설레는 기다림입니다.
몇 해 전 멀지 않은 한 지역의 전교조 교사들을 대표해
강의를 부탁해왔던 분 계셨습니다.
다녀오며
제도교육 안에서 대안교육 실천가에 가까운 분들이다 싶었지요.
좋은 연이었습니다.
그리고 두어 해 뒤엔 다른 지역으로 옮아간 학교에서
전 교사를 대상으로 대안교육에서 바라본 공교육을 얘기해달라는 요청을
역시 그 분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횡설수설하다 돌아왔더랍니다.
존경하던 한 어른을 잃고 상복을 입고 갔던 길이었습니다.
상여가 나가던 날, 마치 그것이 까닭이기라도 했는 양
그날 정작 준비해간 말이 말이 되지 못했습니다.
준비해온 것과 생각이 좀 달라졌고
달라진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았지요.
그런 속에 강연이라고 시작하고
강의가 끝나고 민망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그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 수도 없었지요.
그렇게 수백일이 흘렀더랍니다.
“오래 부끄러워 고개 들지 못했습니다. 그때 어쩌자고 하려던 말을 그만 다 버리고 횡설수설하다 왔던 걸까요?
무엇보다 불러주신 분 곤란하게 해 여태 전화 한번 드릴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늦은 설 인사에 기대 용서를 구합니다. 아울러 보다 청안하시옵기 바랍니다. 옥영경 절.”
모르지 않으셨을 듯한데,
연락이 없는 동안 외려
혹여 당신이 제게 결례를 했던 건 없나 가끔 고민했다시데요.
그리고 오래 연락드리지 못한 물꼬의 큰 논두렁 한 분께도 문자 드렸습니다.
“너무 오래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허나 늘 어젠 듯 지척에 계신 듯하였지요. 맘이 늘 봄이시길. 옥영경 절.”
용서를 구합니다, 아둔한 날들에.
새해여서, 설이어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