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11.쇠날. 맑음

조회 수 1039 추천 수 0 2011.02.25 03:13:55

 

 

본관 뒤란은 아직도 북극입니다.

높다랗게 쌓인 눈이 아주 얼어있지요.

지나다닐 일도 더러 있기 얼음을 깨기 시작했습니다.

 

눈 덮인 논을 지나노라면

벼 그루터기를 둘러싼 가장자리가 빠꼼 눈이 내려앉았습니다.

어느 작가는 그것을 일컬어 생명의 자리라 했던가요.

벼를 베어낸 뒤에도 생명의 온기는 그리 남는다는 뜻이었지 싶습니다.

그런데, 길섶 바위 가장자리도 눈이 그러하고

하다못해 깡통 버려진 둘레도 그러합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은

바로 존재의 자리이기 때문 아닐까 싶데요.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생물이건 생물이건 존재적 생명이란 게 있고,

바로 그 생명이 눈을 녹게 한다 뭐 그런...

 

오늘 물꼬의 논두렁 한 분이

장기를 이식하는 수술을 하신다 했습니다.

물꼬로 요양을 하러 오기도 하셨더랬지요.

온 가족이 물꼬랑 맺은 인연만도 십년이 넘어 됩니다.

온 마음이 거기 갑니다.

기도합니다.

 

영화 한 편 보았습니다; 어윈 윙클러의 <At Frist Sight>(1999).

선천성 시작장애인인 주인공은 새로운 안과기술로 시력을 찾으나

다시 시력을 잃습니다.

“장님으로 크면서 두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앞을 보는 것이고 하나는 뉴욕레인저 하키팀에서 뛰는 거였는데 잠시 시력을 찾았던 기적 이후 선택할 수 있다면 하키선수 쪽을 택하고 싶습니다, 하하.

보는 게 그리 나쁜 건 아니었습니다. 아주 많은 걸 봤지요. 정말 아름다운 것도 있었고 무서운 것도 있었고 벌써 잊어버린 것도 있습니다. 두 눈 속에 담긴 특별한 표정, 구름들, 그 이미지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앞이 보였을 대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니까요. 자신이나 타인 또는 인생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그건 암흑 속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수술로도 고칠 수가 없지요.

그리고, 진정한 자신을 보게 되면 정말 많은 것을 본 셈이 되죠. 그건 눈이 없어도 됩니다.”

영화의 말미 그를 찾아온 여자 친구의 대사도 인상 깊습니다.

그에겐 오래전 깎다가 밀쳐둔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그 조각품 완성했어. 그냥 마음 가는대로 해봤는데 괜찮은 것 같애. 나 자신을 의심하거나 몰아붙이지 않고 있는 그 자체로 생기를 불어넣는 게 그럴 수 없이 즐거웠어.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답더라니까.”

자신을 의심하거나 몰아붙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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