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12.흙날. 맑으나 바람 찬

조회 수 1195 추천 수 0 2011.02.26 02:42:30

 

 

“큰일 났어요!”

아이가 좇아왔습니다.

앞집 홀로 사는 할머니댁 마당에서

수돗물이 분수처럼 치솟고 있었습니다.

긴 겨울, 그리고 동토(凍土)였던 이 골짝이

얼마나 모질었나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지요.

그예 땅 속에서부터 터진 것입니다.

이장님이 좇아오셨고, 소사아저씨도 나갔습니다.

이장님은 이장 일을 맡기 전 수년을 마을 수도담당관이셨지요.

김천에 넘어갔다 왔더니

소사아저씨가 이장님을 도와 수습을 했다 했습니다.

“저어기 위에 관을 잠그고 했는데,

다 고치고 올라갔더니 그새 얼어서 잠근 게 풀어지지가 않아서...”

날 무섭게 추웠던가 봅니다.

망치로 두들겨 관 꼭지를 틀었더라지요.

그런데, 이제 같은 방향에 있는 간장집 부엌물이 나오질 않습니다.

일단 좀 두고 보자 합니다,

수압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고,

물길이 제자리로 찾으면 별일 없이 나올 수도 있겠기에.

할머니는 소사아저씨도 와서 거들어주어 고마웠다고

저녁답에 술을 내오셨습니다.

 

오후, 김천에서 교사풍물패 너름새의 위미경샘 혼례가 있었습니다.

특수학교의 영양사였던 샘은

어느날 특수교육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 그 학교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유설샘과 미루샘의 혼례에 주례를 선 경험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챙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전까지, 혼례식장에 신랑신부 있으면 되었지,

특히 후다닥 몰아가듯 하는 식이 마뜩찮아,

그간 간 혼례라고는 다섯 손가락도 아니 될 겝니다.

그런데 주례를 선 뒤,

정말이지 혼례잔치가 얼마나 큰 의미인가를

새로이 보게 되었던 거지요.

그 뒤론 제법 챙기고 사는 일 되었답니다.

잔치라고 구미의 김미순샘과 사부님도 뵈었고,

한때 같이 풍물을 쳤던 너름새 단원들도 만나고,

누구보다 반가운, 벌써 5학년이 된 예현이도 봤습니다.

지난 겨울 어영부영 하다 그만 계자를 지나치고

아쉬워라 하던 아이를 게서 얼굴 볼 수 있었네요.

서로 한참을 얼싸 안았지요.

살아오며 위샘 같이 웃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싶습니다.

개그우먼이 무색하지요.

오늘만 해도 식장에서 혼례선서를 하는 신부의 우렁찬 대답에

자지러지게들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시작일 뿐이었지요.

마지막 카펫의 끝지점에 이른 신랑신부,

점잖던 그니들 갑자기 디스코를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그래, 위미경이 그냥 가지 않을 줄 알었다.”

“내 60평생 그런 신부는 첨 본다. 밥 먹다가도 웃을 끼다.”

“그러면 그렇지. 어째 조용터라.”

유쾌한 혼례식장이었지요.

그리고, 저는 또 한 깨우침 했습니다.

난 너무 진지해,

헐렁함이 주는 여유에 대해서 생각 많이 했더랍니다.

사람이 더 헐렁해야지 싶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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