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17-19.나무-흙날. 맑음

조회 수 1151 추천 수 0 2011.02.28 11:48:52

 

 

19일, 대동 강물도 풀린다는 우수,

대해리엔 새벽부터 내리던 눈이

온 산마을에 소복히도 쌓였더랍니다.

소사아저씨는 그 눈을 따라다니며 바로바로 치웠더라지요.

 

다시 서울입니다.

사흘,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기락샘이 동료 박사님들과 함께 하는 산행모임에 우리 가족도 동행했는데,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여행이자 가족여행도 되었습니다.

 

18일, 한라산행.

성판악(성널오름,750m)으로 올라 사라샘→속밭대피소→진달래대피소(1,500m)→정상(한라산 동릉 1,950m).

하산길은 용진각 대피소 터→삼각봉→개미목→탐라휴게소→숯가마 터, 구린굴→관음사지구.

총 18.3km,

그런데 진달래대피소 이르기 전

사라봉오름(해발 1,324m/ 원코스에서 왕복 1.2km)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까지 합하면

20km 가까이 되는 눈길을 걸을 참이지요.

동절기(11~2월)는 각 기점에서 오전 6시 이후 산행이 가능하고

진달래밭대피소는 12시, 동릉 정상은 오후 1:30 이전에 통과해야 합니다.

 

이른 아침 성판악에서 국밥을 먹고 8시쯤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0년 전에 산 아이젠을 신발에 끼우며

지나간 모든 산들을 떠올렸지요.

산에 가면 산이 끌어당깁니다.

엊저녁 제주도로 날아들어 인사를 나눈 늦은 밤의 숙취를

잰 걸음으로 풀며 올랐지요.

햇살 이내 퍼졌고,

까마귀들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깍깍거렸습니다.

 

길은 수월합니다.

차츰 나무들은 키가 낮아지고 있었지요.

섬바람에 견디어낸 것들의 세월일 테지요.

9:55. 일행 중 몇몇만 주 길에서 갈라져 사라봉통제소에 닿았습니다.

통제소 이르기 전의 분화구가 정작 백록담보다 더 절경이다 싶데요.

새 한 마리 포르릉 눈앞에서 날았습니다.

안개로 먼 아래는 보이지 않데요.

 

류옥하다가 몸이 많이 둔해졌습니다.

봄가을로 여섯 차례, 여름과 겨울 여섯 차례,

그렇게 큰 산을 빨빨빨빨 곁에서 곧잘 오르던 그였는데,

지난해 산오름에 게을렀던 탓인지 속도가 더뎠습니다.

그래도 되 내려간단 소리는 않고 오르고 있었지요.

 

진달래밭대피소 전 가파른 오름길,

쥐가 난 군인 하나 쓰러져있었습니다.

역대로 사람이 죽어나간 곳도 바로 이 어름께였고,

사람들이 가슴앓이를 호소하는 곳도 바로 이 오름 어디께입니다.

쉬 오르다 갑자기 가팔라지는 구간이라 그러할까요.

동료들 몇 발만 구르는데,

아이들과 계자를 한 오랜 경험은 이럴 때 힘이 되지요.

일행들을 보내고, 다리를 풀어주었습니다.

곧 다시 가방을 매고 오르는데

이번에는 아주 쓰러져서 입술이 새파래진 남자를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대전에서 온 53세. 지병은 없다는 곁의 아내의 설명입니다.

군인들이 있었지만 누구하나 심폐소생술을 모른다 합니다.

그나마 지나던 두엇이 인공호흡을 할 수 있었고,

군인들이 손발을 주물렀습니다.

“119는 1시간 반은 걸린다는데....”

헬기를 진달래밭 대피소 쪽으로 부르지요.

마침 바늘쌈지 있어 바늘로 열손가락 열발가락 그리고 인중을 따 주고

비로소 피 돌았습니다.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길래 그들을 뒤로 하고 일행들을 좇았지요.

머잖아 헬기 닿았고 그가 실려간 걸 짐작했습니다.

점심을 거기서 먹었습니다.

 

정상에서 모두 만나 사진들을 찍고 금새 하산입니다.

삼각봉 지나며 지독하게 가파른 곳에서

온 무리들이 길 밖으로 튀어나갈 뻔하기 여러 번이었지요.

 

빨리 걷는 산도 있고 읊조리며 걷는 산도 있지요.

이번산행은 속도를 낸 오름이었습니다.

한편 산을 오르면

같이 간 이들이라든가 사람에 관심이 더 가는 산오름도 있고

산 정치에 더 쏠리는 산오름도 있는데,

이번엔 지나치는 이들한테 관심이 컸습니다.

예닐곱 먹은 아이가 아비 손을 잡고 가기도 하고

초등생들과 나선 어미도 있었고

이달 마지막 주에 민주지산을 간다는 산악회원도 만나고

홀로 뭍에서 건너와 산을 오른 스무 살 여자 아이,

관음사 쪽에서 홀로 가벼이 올라 되돌아가는 제주대 젊은이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맞잡아 오르는 설산야영을 하러 오는 무리와

언젠가 히말라야등반을 꿈꾸는 동호회 사람들도 만났지요.

해병대 군인들이 몰려 내려가기도 하였답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산을 내려와 목욕탕으로 우르르 다녀온 뒤 횟집에 자리를 잡자

같이 간 한 박사님이 후배로부터 공수 받은 전복을 내기도 했더랬지요.

겸손함과 배려가 빛나던 모임이었습니다.

아이에게도 좋은 배움의 자리 되었을 것입니다.

 

저녁에 헬기에 실려간 이가 숨졌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가위 눌렸습니다.

그 자리에 더 있었어야 했을 것만 같았지요.

명복을 빕니다.

 

19일, 우도행.

배를 타고 들어가기 전 선착장 앞, 어제 남은 전복이 찜이 되어왔습니다.

방파제에서 소주 한잔을 걸치기도 하였지요.

버스에서 내려 올레길을 걷고 다시 버스를 타고 부두에 닿았습니다.

우도에서 배를 타고 나오기 전

후두둑 해물뚝배기들도 맛보았지요.

저녁 비행기로 서울행.

 

아, 마지막,

물꼬특강(?)이 있었더랍니다!

“그래도 경제구조로 들어가야지 오래할 수 있지 않겠어요?”

끝의 질의가 그러하였지요.

“서울에서 움직일 때는 적으나마 임금구조에 있었는데,

 서울과 오가던 살림을 영동으로 아주 옮아간 뒤엔

 공동체라는 깃발 아래 모두 한 주머니로 살았던 거지요.

 그찮아도 고민을 오래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임금이 따로 책정되지 않아 물꼬의 존립이 가능했는데...”

상설학교 무상제도의 실험을 네 해(2004-2007)만에 내려놓았고,

무임금제도(2001-) 역시 이렇게 변환기를 맞게 되는 것인지...

누구 말대로 결국 가내수공업처럼 가족사업화해야 존립이 가능해지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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