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22.불날. 맑음

조회 수 1064 추천 수 0 2011.03.07 03:26:18

 

 

달골에서 내려가는 길목,

호랑나비 날고 있데요.

아, 봄이려나요.

저런 것에도 위안이 되는 삶입니다.

 

어제 아이가 써둔 입춘첩을 붙입니다.

작년처럼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을 풀어쓴 것입니다.

봄이 왔으니 크게 길할 것이요

따스한 기운 도니 경사가 많으리라는 바램이지요.

“봄을 맞아 크게 길하라”

“새해 왔으니 좋은 일 많으리라”

읽고 있으니 기분이 나아집니다.

그래요, 크게 길할 겝니다,

좋은 일 많을 겝니다.

 

지난 주 초 받았던 한전 경고장을 들여다봅니다.

흙집의 부실공사로 인한, 그리고 불량자재에 의한 벽 속의 수도관 파열.

그리하여 온수의 누수.

겨울에다 계자까지 있어 물을 잠글 수는 없어 내리 틀어놓을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어마어마한 전기료를 내게 되었더랬지요.

다시 3년 안에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얼마의 과태료를 부과하겠고

강제로 계약전력을 증설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땅이 풀리길 기다립니다.

3월 내내 곳곳 공사가 이어질 것입니다.

 

최명희의 <혼불> 어느 언저리

열아홉에 소복을 입고 시작한 문중살림을 일으켜 세운 청암부인의 한마디,

“...강모야. 너는 아직 모르리라. 이 집안이, 명예에 비하여 얼마나 고달픈가를......”

그런 대목 있었습니다.

그 말을 기대 얼마나 오래 그 장을 넘기지 못하고 서성거렸던지요.

그 문중은 명예라도 있었고나,

그런데 물꼬라는 이름은 그 이름자의 아름다움에 견주어

사는 일이 얼마나 고달픈지 당신들은 모르리라,

그렇게 되내던 시간 길었으면 고백합니다.

몇 달을 속앓이를 좀 한 일이 있었습니다.

억울하고 분하나 그저 조용히만 지나갔으면 했습니다.

살다보면 서운하고 아린 일이 일어도 나고

사람 사이 갈등 또한 더러도 생기기 마련인데

무엇하러 우리 사는 사정 다 뒤집어 보이나도 싶었지요.

그건 위선이 아니라 품위라 여겼습니다.

모든 일은 그저 '지나가고',

한편, 자신의 당당함과는 상관없이 세상인심은 돌아가는 법이지요.

예를 들어 어느 공간 혹은 단체가 시끄럽다 칩시다.

시간이 흐르며

사실 그 갈등에서 어느 쪽이 옳으냐는 별반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 시끄럽군.”

그건 이미 허물이고,

그리고 사람들은 발길을 돌립니다.

2005년 한 때의 갈등으로 이미 충분히 경험해보았지요.

그런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습니다.

상설학교 문을 열고 보냈던 갈등의 시간들,

그때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날들도 지났습니다.

오랜 침잠기였던 지난 4년여는 살림 규모가 크게 줄었습니다.

여름과 겨울에 하는 계자를 축으로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라 나가지 않는 임금만큼 수익이 되고,

작으나마 학기 중에 있는 자잘한 행사와 밖에서 하는 강연과 글쓰기들로

살림을 보탰지요.

아무래도 활발하지 못한 활동들은 그대로 후원에도 영향을 미쳐

지금은 대부분 오랜 지기였던 이들 중심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은 지지 혹은 동의를 하는 이들이

꾸준히 마음을 보태는 것으로 살림을 더해왔습니다.

그렇게 용케 들어오는 살림이 나가는 살림을 메웠지요.

기적이었습니다.

하여 한 해를 살아내느라 급급해서

어디 새로이 낡은 살림을 살펴볼 수는 없었지요.

공동체라는 말을 버린 지는 오래이나

같이 한 집안 식구처럼 상주하는 이들에겐

생명보험과 건강보험 그리고 먹고 사는 일을 예서 해결해왔습니다.

더하여 어른한테는 달에 5만원, 아이한테는 달에 1만원의 용돈이 나누어졌지요.

그런 중에 공동체라는 말을

터무니없이 해석하고 어거지를 부리는 이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을 하며.

그 속에 물꼬의 존립과 자존을 지켜내는 것이

과연 개인의 욕심인가, 아니면 공의가 맞는가 사투를 벌어다시피 한 시간은

싸움 끝에 일어나는 세상의 모든 우발적 살인을 이해할 것 같은 시간이기도 했지요.

가끔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들에

어디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개인만 거기 있겠는지요.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온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억울함과 분함이 있기도 했을 테지요.

오죽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싶더이다.

이 모든 것을 불가에서는 업이라 하던가요.

도대체 공동체와 새로운 학교에 대한 꿈이

한국사회에서 이토록 무거운 일인가,

아니면 순전히 잘 하지 못한 개인의 몫인가,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습니다.

그건 자신에 대한 깊은 회한과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지요.

결국 다 내 업일지니, 그리 읊조리게 됩디다,

공동체라면 진저리를 치던 사람들,

대안학교 부모라면 몸서리치던 이들을 깊이 이해하면서.

그 낱말이 빚어내는 억압이 개인의 존엄을 갉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제(아니 저 얼마 전부터도 그러하였지만), 그 단어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합니다.

물꼬, 더 이상, 공동체, 그런 거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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