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중학생을 위한 계절 자유학교-이기고 돌아온 봄을 맞다’.

예비중 계자 나흘의 첫날밤입니다.

자정이 넘어서야 공식 일정이 끝났습니다.

그러고도 저들끼리 또 앉고파

씻는 시간을 더해 한 시간여 더 시간을 바랬지요.

2시가 지나서야 비로소 잠잠합니다.

저렇게 하고픈 말이 많은 아이들,

그저 안에 있는 것들 다 쏟고만 가도 좋으련 싶습니다.

 

예비중 계자,

1994년 여름의 첫 계자부터 보자고 해도 처음 있는 계자이고

1989년부터 시작된 물꼬 역사를 봐도 또한 그러합니다.

중학 입학이 대입을 향한 첫 관문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이가 없는 이 시대

(이미 초등학교부터 그러하다고도 하는),

등 떠밀려 그 시간을 시작할 게 아니라

마음을 잘 잡아 다음 걸음을 그만큼 잘 디딜 수 있음 좋지 않을까,

그렇게 마련한 시간입니다,

마침 이 산골에서 홀로 공부를 해나가는 또래 아이도 있어.

 

여기 사는 아이를 더해 열이 모였습니다.

지난 겨울방학, 노는 캠프(공부가 아닌)가 전멸했다는 풍문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공부로 내모는 거야 어디 한두 해 일이냐지만

이 정부 들어서서 노골화되던 것이

겨울방학조차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부모들이었다지요.

급기야 2월 봄방학,

예비 중고생을 위한 반짝 집중코스가 필수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다녀가기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소리

아이 하나 전하기도 하였지요.

그런데도 보내준 부모님들과 온 아이들, 고맙고 기특하고,

여덟 남짓이라는 공지 규모를 넘어 모일 수 있어 또한 고맙습니다.

오산의 수현이가 아버지 차로 먼저 들어섰고,

세훈, 재욱, 부선, 지호, 성빈, 현빈이 마을로 들어오는 오후 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현진이와 성재, 기차를 놓쳐 면소재지 들어오는 버스로 와

택시를 타고 곧 모두를 따라 들어왔지요.

이러면 이어지는 이야기는

품앗이샘들, 혹은 새끼일꾼들이 누구누구 함께 하나 이겠지요.

헌데, 들어올 이들 다 들어왔습니다.

이번 계자는 계자라기보다 모임에 가깝고

여느 계자와 다른 목적을 지녔기

“이 공간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이들이니 돌봐줄 이들이 있어야는 것도 아니고

또 이제 새끼일꾼으로 들어설 이들이니 놀아줄 어른이 있어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이들만 불렀습니다.

소사아저씨와 이곳에 사는 아이가 모두를 바라지할 것입니다.

물론 다른 계자처럼 밥바라지가 따로 있지도 않고

작은 모임들처럼 제가 밥을 하며 전체 안내도 할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도 예비중 계자는 또 하나의 실험이 되겠습니다.

이곳에 대한 경험을 지닌 아이들이라 가능할 테지요.

 

저녁을 먹습니다.

“옥샘이 해주는 맛있는 밥 먹을려고...”

오다가 군것질도 삼갔다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단 것들 입에 아직 남았겠거니 싶었으나

여기만 오면 마치 못 먹고 살기라도 했는 양 맛나게도 먹는 여느 때처럼

아이들 먹성이 늘었음 늘었지 줄지는 않았더랬지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자연스레 부엌일을 도와주러 오는 아이도 있고,

설거지 또한 저들끼리 차례를 이미 정해두고 있습니다.

속틀을 안내하고 곧 달골로 오르지요.

서서히 시간이 달아오르고 있고,

그믐으로 가는 산골 밤길에서도 아이들은 빛이 납니다.

 

그런데, 가는 날은 꼭 장날이 되지요.

잊히지 않을 계자를 만들 달골이었습니다요.

아이들 왔으니 겨우내 잠가두었던, 창고동으로 가는 수도밸브를 열었겠지요.

창고동 건물 외벽인 여자화장실쪽 물이 솟구치고

부엌은 물바다 금새 되었습니다.

창고동도 여러 해를 지나며

우리들이 청소명상으로 첫 일정 시작할 줄 안 게지요, 하하.

부리나케 물을 잠급니다.

말해 무엇 하나요, 지난 겨울이 그토록 모질었던 거지요.

녹으며 곳곳이 그리 뿜어대는 게지요.

아래 학교의 본관 건물 부엌 뒤란도 수도관이 터져

지금 벽에서 물 뿜어내는 소리 씩씩거리고 있는데,

공사를 할 곳이 어디 이 두 곳만 일는지요.

3월이 참말 바쁘겄습니다.

그나저나 이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퍽 까마득했겠습니다.

아이들 불러놓고 사고가 생기면 당혹도 하고 마음도 동동거릴 테지요.

하지만 이 아이들과 함께라면

그마저도 즐거운 일이 될 줄 압니다.

 

오전 내내 달골과 학교를 쓸고 닦고도

창고동은 쓸기만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와서 닦으면서 일정을 시작하려는 뜻이었지요.

햇발동에서 걸레들을 빨아 건너갑니다.

어디를 닦아야 하는가,

후미진 곳을 살펴보는 눈을 기르자 합니다.

어떻게 일을 나눌까,

조화롭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도 합니다.

시리고 힘이 들었으나 같이 해서 즐거웠다 하였습니다.

이 공간에서 나흘의 아침저녁 수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가을을 보낸 마른 꽃들을 물에 띄워

춤명상을 열었습니다.

어떤 마음들로 시작하려나,

새로 들어서는 중등 문 앞에서 우리는 춤으로 그 날들을 준비하였습니다.

당당하거라, 한껏 뛰어라, 멀리 내다 보거라,

춤에 그런 사위들을 담았더랍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축복을 주었지요,

먼 길을 가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신도 여미라 하고 옷도 잘 채우라하며.

 

다음은 햇발동 거실로 건너와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만 더 와도 안됐겠다.”

꼭 열하나 둘러앉으니 상 앞에 맞춤합니다.

읍내에서 구워낸 과자들과 포도즙, 과일을 내놓습니다.

“두 사람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알아서들 또 진행바라지를 하지요.

“돌아보면 낯 뜨거운, 창피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는 일부터 해나갑니다.

뭉치 실이 하나하나 풀려가고 있었지요.

그러다 어느 결에 아이들의 꿈에 이야기는 이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직업의 수가 2만여 개(이름 얻지 못한 직업까지 더하여),

그런데 부모가 제 자식에게 갖는 꿈도, 아이들이 자신에 대해 지닌 꿈도

그 가운데 채 스물이 안 된다지요.

이 정도의 규모에서도 그 퍼센트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게 안 되면 실패한 삶일까?”

세상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도 많지 않던가요.

새삼스레 확인한 자리였지요.

자기 자랑하기도 이어집니다.

다들 한가닥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하는 자랑만이 자랑이 아니지요.

그랬더니 비로소 자기만의 자랑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누구는 그랬지요.

“나는 정말 엄마 말을 잘 들어.”

그래요, 그런 것인들 자랑이 왜 못 될까요.

이어, 지금도 행복하기, 노는 것과 공부가 양립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도 했더랍니다.

 

아직 못다 푼 실타래는 내일 밤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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