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28.달날. 흐림

조회 수 963 추천 수 0 2011.03.13 10:44:44

 

 

이 산마을에 물꼬가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6년 가을이었습니다.

2001년 겨울 초입 서울서 아주 이사를 오기 전까지

나중에 들어설 상설학교와 생태공동체를 그리며

봄여름가을겨울 계절학교(1994년부터 여러 곳을 떠돌며 하던)를 예서 한 건

물론 그 이듬해부터였지요.

폐교된 지 5년이 다 되어가던 학교는 습이 많고 잡초 무성하여

사람 떠난 자리의 폐허란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말이 무색치 않았습니다.

하루 세 대 다니는 버스는 그제나 이제나 변함없으되

먼지 나고 덜컹거리던 길은 오래전 포장이 되었고,

첩첩이 산중이어 오가던 차도 거의 없던 곳이

최근 몇 해 더러 더러 새집이 들어서기도 하였습니다.

별장으로 쓰이기도 하고

도시와 이곳 두 살림을 해나가기도 하지요.

 

불이 켜있기 한 해 몇 밤이 되지 않는 어느 댁 별장 추녀 아래

풍경 하나 매달려있습니다.

저녁이 내릴 때, 혹은 푸른 하늘이 시리기도 할 때 풍경소리를 듣노라면

산골 게딱지같은 우리 집이 저 소리로 세상의 모든 평화가 되는구나,

뜻하지 않은 이런 호사려니,

풍경은 다는 이의 몫이 아니라

이렇게 듣는 이의 것이로고나,

세상 어느 것도 부럽잖은 부자가 됩니다.

내 팔 안에 있는 것만 내 것이 아닐지니,

그래서 산이, 들이, 강이 가난한 사람도 살리는구나,

사는 이치가 고마워 지는 게지요.

 

교무실의 중앙 컴퓨터가 낡았습니다.

인터넷도 더뎠지요.

더딘 거야 무에 흠이고 불편일까만

이제나 저제나 멈춰버리겠다는 걱정이

슬금슬금 일고 있기 여러 달이었습니다.

그나마 아이가 문제를 해결해오고 있었지요.

“읍내 가실 때 한번 갖고 나가셔요.”

그러기도 여러 날이더니

그러다 결국 초기화면부터 아주 먹통이 되었습니다.

본체를 들고나갔지요.

“(이래서) 교무실이 돌아가긴 해요?”

돌아가고 말고 할 행정일이랄 것도 몇 되지 않지만

결국 새로 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얼마 전 대구에서 연락 하나 왔습니다.

오랜 인연입니다.

서울 살 적

제 시집에 대해 그가 잡지에 서평을 실었던 일이 첫 연이었습니다.

물꼬가 영동으로 옮아온 뒤 물꼬를 취재오기도 했더라지요.

그가 언젠가 써서 보낸 글월 하나는

한 잡지사와 하고 있던 갈등을 지나가는 시간동안

고스란히 제 마음을 대변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봄꽃 흐드러집니다.

꽃 보기 민망한 생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 문제로 만납니다.

중학교를 가던 큰 아이 일로,

그리고 이제 작은 아이 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십년하고도 몇 해 더 훌쩍 넘은 세월이네요.

“이제 그곳 꽃피면 더욱 미덥겠네요.”

‘그곳’으로 다녀가리란 소식입니다.

 

소사아저씨는 지난달 초의 열흘에 이어

다시 부산 길을 며칠 가셨습니다.

2003년 겨울 들머리에 물꼬로 이사를 온 이래

이 살림에 오래 묶여 지내오던 그였습니다.

누가 있어 이 낡은 살림의 자잘한 일들을 해나가겠는지요.

늘 고마운 그입니다.

물꼬에서는 여느 일하는 곳처럼 번듯한 월급이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랄 것 없이 그저 식구로 예서 먹고 살고 입어왔더랬지요.

그런데도 애쓴 보람 없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이제는 언제고 편히 훌훌 다니시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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