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3.나무날. 맑음

조회 수 1071 추천 수 0 2011.03.13 21:29:11

 

 

“어머니, 하늘 좀 봐요!”

마을로 내려오려 나서다 아이가 외쳤습니다.

가을하늘 같은 하늘이 청아하게 펼쳐지고 있었지요.

위로입니다.

 

마을의 수도를 관장하는 인술이 아저씨한테 부탁을 넣었더랬습니다.

물꼬가 들어오던 1996년 가을 당시부터

그 그늘이 늘 얼마나 크던지요.

부엌으로 들어오는 수도가 뒤란 벽 안에서 터져 소리를 낸지 여러 주입니다.

그래도 수압은 별 영향이 없더니

어제 오늘은 그마저도 뚝 떨어져 물이 쫄쫄거리고 있습니다.

아저씨가 하실 만한 일은 아니지만

공사를 어떤 규모로 어디에 맡겨야 하나

상황을 알아야 일도 벌이지요.

고추장집 보일러도 봬드리고

달골도 올라가 살핍니다.

이러저러 조언을 받지요.

그리고 두어 곳의 설비회사에 전화를 넣었습니다.

달날 정도면 공사를 해볼 수 있으리라 합니다.

 

읽고 있던 책의 어느 구절에 옛 이야기 한 편 실려 있었습니다.

소문에 얽힌 왕가(王家) 여식의 이야기였지요.

어릴 적 수수께끼를 할 적 그리 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문은 문인데 닫을 수 없는 문은?”

그때는 그저 말놀음인가 했는데,

정말 닫을 수 없는 것이 소문입니다.

거구였던 외양에서부터 하늘에서 냈음이 분명한 그 잘난 아비도

소문 한 토막을 이기지 못해 음행한 소문으로 여식을 결국 잃고 말았지요.

소문은 칼과 창 하나도 쓰지 않고 연기처럼 풀려

장수와 재상과 임금을 점령하여 굴복시켰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하나,

남의 이야기 사흘이라 하나,

질기게 물어뜯는 소문으로 목숨 버린 이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러니 지난해이던가 어느 유명가수의 학력진위여부에 쏠린 광기가 번득이고 있을 적

행여 그의 죽음을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더럭 겁이 났을 밖에요.

소문을 건너갈 수 있는 방법은 잘 알지 못하겠으나

그런 남의 소문이 돌 때 우리 처신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사촌에 대한 상사(相思)로 죽은 한 집안의 아들에 대해 부인네들이 쑥덕댈 때

대가의 큰 어른이 이리 일렀지요.

“사람들의 마음이란 헤아리기 어렵네. 여기 모여서들 분분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겉으로 보면 인간의 도리와 행신(行身)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지만, 한번 뒤집어 보면 묘한 구석이 숨겨져 있거든. 그는 이미 저승의 객이 되어 버렸는데, 오죽이나 사무쳤으면 태산이라도 들어 옮길 청춘의 나이에 제 목숨 하나도 다 부지 못하고 죽어갔을꼬. 무주고혼(無主孤魂) 거리 중천에 떠도는 그 어린 것이 가련하기 짝이 없건만, 이승에 남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이지저리 헤집고 되엎으며 남모르게 재미도 있어 한단 말일세. 내 말이 너무나 야속한가? 이미 세상이 싫어서 떠나 버린 혼백의 일을. 세상에 남은 사람들이 이러니저러니 공론하면서 뒷자리를 시끄럽게 어지럽히는 것도 망자한테 미안하고, 덕 있는 일은 못되는 것. 그만들 이야기하세.”

그래요, 그만 이야기들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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