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더 내려갔네요.
바람 많기도 합니다.
달리는 차가 휘청휘청했지요.
순천향대의 한 과에서 특강이 있었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말하는 이는 성실했고, 학생들은 예의 발랐습니다.
조금 건조했던 듯합니다.
마음이 시달린 일이, 사람의 일로 끄달리고 있는 날들 오래이니.
그렇더라도, ‘지금’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이라니...
그 학교에서 강의하는 선배 수업 참관도 했습니다.
뜻밖의 모습을 봅니다.
반응 없는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순간순간 답을 한 이들에게 포인트를 주고 있었습니다, 꼼꼼하게.
까탈스럽게 점수를 들이밀어야 이 시대 대학강의란 게 된단 말이지요.
정교수가 되고 그는 그런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고,
어쩌면 조금은 열정이 식었습니다.
한때 드높게 들었던 깃발은 내려졌고,
세상은 그리 변해갑니다려.
이윤기 감독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보았습니다.
개봉한 영화를 제 때 극장에서 보기 아주 오랜만이었지요.
영화를 고르고 극장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려고 생각했고 가서 골랐습니다.
아주 많은 영화가 걸려있었고, 감독의 이름자로 선택한 영화였습니다.
“이윤기 감독? 그의 영화가 뭐 있었지?”
<여자, 정혜>(2005)가 생각났지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하나 하나 그의 다른 영화들이 떠올랐습니다.
<아주 특별한 손님>(2006)부터 기억해냈지요, 한효주라는 배우를 눈여겨본.
그리고 <러브토크>(2005), 박희순이란 배우가 깊이 들어왔던 영화.
남자 주인공이 내내 안타까웠던 <멋진 하루>(2008)도 있었지요.
그의 영화들은 미니멀(단촐하단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 같아서)합니다.
말 그대로 장식이 없지요.
그래서 감정에 최대의 장식들을 달아주고 막을 내립니다.
영화에는 두 남녀가 전부입니다.
여자의 새 남자친구는 전화 목소리만으로 등장하고,
실제 고양이를 찾으러 옆집 부부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마치 꿈결 같습니다.
폭우로 인한 바깥의 빗소리가 소리의 전부이고,
공간은 서두의 자동차 안을 빼면 집 내부가 모두이며,
카메라는 느리고 조심스럽고 또 집요하게 둘을 비춥니다.
결혼 5년차 부부의 이별 과정을 담은 단 며칠,
아니 엄밀하게는 단 하루이지요.
그들이 헤어지는 까닭은 설명되지 않지만, 그러나 영화는 설명을 해냅니다.
하지만 그 설명은 다시 말이나 글이 되기 쉽지가 않네요.
이윤기의 영화는 주인공들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아주 집중해서 귀 기울이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가 좋습니다,
집중하게 해서, 조용히 응시하도록 해서.
갑작스럽게 들어와 집 안 구석에 숨어버린 젖은 새끼고양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껏 더 애처롭게 합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되새김질하는 여자,
양파를 썰다 눈을 씻으러 들어가 결국 혼자 비질비질 나오는 눈물을 닦는 남자,
뭔가 서로 이야기가 될 것도 한데 끝까지 소통되지 못하는 그들은
내 현재적 상황 때문인가 내 삶 때문인가 아니면 안타까운 그들 때문인가
덩달아 가슴 싸아했지요.
여자도 안됐고 남자도 안됐습니다.
늘 이윤기의 영화는 제게 그러했습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그들의 눈물을 비가 대신 울고 있었지요.
선배랑 같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선배는 “현학적이고, 리얼리티 부족에다, 무성의한 영화”라고 화를 냈고,
저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최고의 영화라며
그리고 그 공간에서 숨소리까지 날것으로 드러내는 두 배우에 대해 극찬했고
자로 잰 듯한 감독의 계산에 입을 다물지 못했노라고 했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이토록 다릅니다.
그 다양성이 즐거웠지요.
돌아와서 그 영화에 대한 반응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어떤 사랑은 미련이 남더라도 끝내야 할 용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어느 평론가였던가 기자였던가,
그리 쓴 구절이 있었지요.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