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18.쇠날. 맑음

조회 수 1220 추천 수 0 2011.04.02 23:53:45

 

 

간장집 남새밭에 깔아두었던 짚들을 걷어냈습니다.

시금치와 상추가 그 질겼던 겨울을 이겨내고

기쁨처럼 와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시금치와 쪽파, 그리고 마늘이

비닐하우스가 아니라 노지에서 겨울을 나는 거야 여기서도 낯설지 않았으나

겨울을 지낸 노지 상추를 보기는 처음입니다.

자꾸 돌아본다지요.

시금치 큰 놈들은 한 끼 밥상에 실히 오를 수 있겠습디다.

내일 솎자 하지요.

 

손님 여럿인 저녁 밥상이었습니다.

읍내에서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미국인 친구가 주말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도 들어왔고,

이 지역 귀농자모임도 마침 물꼬서 하게 되었습니다.

일곱 분들이 오셨지요; 양만수님, 이광진님, 김복진님, 송남수님, 윤영식님, 조성보님.

첫길에 깜깜하기까지 하여 오시는 길들이 멀더라나요.

주로 만나는 면소재지에서 차로 겨우 10여분 들어오는 건데,

해지는 초행길은 그런 법일 테지요.

퇴임을 앞두고 과실수를 심기 시작했다는 소식,

앞서 먼저 사과나무를 심고 가꾸는 이가 좋은 스승이었다 하고,

일하는 가운데 사정을 아는 이웃의 작은 인사 하나가 힘이더라고도 하고,

군 지역을 다 아우르는 귀농자모임을 운영해나간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만나서 그저 밥 한 끼 먹는 자리이지만

예순을 막 내다보거나 훌쩍들 넘긴 나이들이라

당신들께 마음을 많이 기대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들꽃차를 내는 송남수 샘께는

특별히 이번 학기를 위해 부탁말씀도 드려놓았지요,

서울서 7학년 아이들 와서 지낼 적

강사님으로 오십사 하는 일과

가까이서 좋은 차를 덖어낼 수 있도록 제게 길눈밝힘이 돼 달라는.

봉투와 선물을 놓고들 가셨습니다.

또한 고맙습니다.

참, 지난 불날이던가는 겨울부터 얘기 오가던

면소재지 산악모임에 물꼬 식구들도 함께 하기로 합니다.

달마다 한 차례 간다는 산행을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를 것이나

그런 모임도 뿌리내리기의 하나일 테지요.

 

그런데, 연탄을 좀 일찍 갈아 넣어놓지 않아

막 간 연탄난로가 산골 저녁을 얼마나 떨게 하던지요.

어르신들께 두루 죄송했네요.

가뜩이나 이 골짝 들머리랑도 온도차가 크다는 이곳인데,

면소재지랑은 또 얼마나 그 차 컸을려나요.

가실 무렵에야 가마솥방이 좀 훈훈해졌더랍니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내막이야 말을 않으니 어찌 알겠습니까...”

하지만 근심이 지나치면 몸이 상하지 않겠느냐며

한 어르신이 지난 섣달부터 제 걱정스러움이 심상찮다시며 글 한줄 주셨습니다.

불취어상(不取於相).

살면서 만나는 눈앞의 온갖 헛된 것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는 말씀이셨지요.

금강경에서도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을 본 적 있습니다.

상을 취하지 아니해야 여여부동한 자리가 된다...

오래 방황하던 한 친구가

근래 김태완 선생의 <금강경>을 읽기로 했다며 이리 쓴 구절도 오늘 마침 읽었네요.

“파도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은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인연들은 왔다 갔다 하는데 마음은 오롯이 물로 있습니다.”

상은 어찌해야 취하지 않게 되는 것이며,

오롯이 있는 그 마음은 그저 물이니 마시란 말인지 보란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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