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23.물날. 날 좋은

조회 수 1075 추천 수 0 2011.04.02 23:56:31

 

 

서울.

낮에는 부암동을 넘어갔더랬습니다.

유명한 바리스타인 선배가 거기서 커피전문점을 하고 있습니다.

발해항로를 따라 뗏목을 타고 떠났던 장철수 선배를 기리는 모임에서

다른 선배 둘도 서울서 보기 어려운 사람 왔다고 좇아 나와 주었지요.

마침 모방송국에서 창사기념으로 뗏목을 다시 띄워보자는 얘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지난 달날 급하게 서울서들 모임이 있었고,

그 일이 되어가는 모양도 전해 들었지요.

스물 댓 살 대학로에서 시작했던 선배의 가게는

마흔 중반을 넘어서며 3층짜리 건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곧 원주에 공장과 여러 부속건물이 완성될 거라지요.

거기 주인장에서부터 온 직원들이 목공기술을 익혀

이곳저곳 다 손으로 짠 흔적이 투박하나 아름다웠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오셨겠습니다.

서울서 3층 건물을 가졌다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꾸준히 한 분야의 공부를 어떻게 해왔고,

거기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익혔는가,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실현해냈는가 그런 과정들 말입니다.

점심도 잘 대접받았습니다.

참, 류옥하다 선수가 그 뗏목에 승선할 수도 있잖을까 하는

어른들의 의견도 있었더랍니다.

 

저녁 7시 명동성당 사순특강에 함께 하는 영광을 얻었더랬습니다.

벌써 지난해 10월에던가 빈민사목위원회로부터 청탁을 받았던 일인데,

진정 어떤 교육이 우리를 살릴 것인가 묻는 자리였지요.

우리 삶에 우리가 원하는 게 정녕 무엇인가,

'순순'한 삶을 우리가 먼저 살자,

그저 지극하게 살아가자,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그게 가르침이 되도록 하자,

어디 가르치는 대로 되더냐, 다 보고 배우는 법이지,

문제는 제도교육이냐 대안교육이냐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쏟았더랬답니다.

물론 산골 사는 이야기, 아이들과 만나는 물꼬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 말이지요.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들어서 어느 순간은 아주 당혹스럽기까지도 했습니다.

신문기자 한 분은 감동적인 강의였다고 문자를 넣어오기도 하였고,

강의가 끝나고 한 젊은 여자 분은 가까이 다가와

눈물까지 흘리며 마음을 나누고 갔지요.

사순절이라는, 특별히 은혜로운 주간이어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고 삶을 성찰하는 그 기간은

해당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 모두를 경건케 하는 거지요.

 

밤 9시가 다 되어 나서는데,

지난 겨울 들머리에서부터 계속 촬영의뢰가 있는 KBS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다시 새로운 연출가와 조연출, 그리고 작가가 찾아왔습니다.

명동성당 맞은편의 한 찻집에 앉았지요.

제작에 아홉의 PD가 참여하는데,

벌써 세 번째 타자로 찾아온 이들입니다.

체계적으로 둔감화된 것이었을까요.

물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까닭으로 거절해왔던 것을

또 너무 신파조라는 것도 마음이 흔쾌치 않았다가

이제는 굳이 못할 것도 없겠다 싶고,

물꼬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적이 들고,

무엇보다 이번에 찾아온 이들이 건강하게 잘 만들 수 있겠는 신뢰까지 생기면서

뭐 할 수도 있지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는데,

뜻밖에도 이번에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여러 달째 끄달리고 있는 문제 하나였습니다.

돌아보면 생의 가장 요동치는 순간이었던, 물꼬의 가장 뼈아팠던 사건에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적 없고 세상에 대한 낙관을 던진 적 없건만,

아마도 처음일 것이 분명한 인간 존재에 대한 실망과 좌절, 그리고 서글픔을 겪고 있었지요.

한 번 제작 주기를 돌리고 난 뒤 이왕이면 맘 편할 때 하자고

외려 이편에서 그들을 설득하며 여지를 두고 이야기가 끝났답니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봐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자정 가까이 여러 차례 문자로 전달되었으나

마음 어지러운 이때 일 더욱 만드는 거라며 기락샘이 더 세차게 말렸더랬지요.

물꼬 이야기를 그 프로그램에 잘 담아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는 시간도 올 날 있을 테지요,

마음 그리 편해지는 날도 오겠지요,

모든 것이 지나가는 때가 올 테지요...

엄밀하게 말하면 시간이 우리를 지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나가는 거지만...

 

대해리.

마침 다시 새는 곳을 발견하고 공사 맡은 이에게 연락한 뒤 서울 길에 올랐는데,

공사 담당했던 아저씨가 와서 다시 잘 잡아주고 갔다 합니다.

소사아저씨는 숨꼬방 옆에 널려있던 나무들을

간장집 뒤란으로 옮기며 정리중이라셨지요.

낼 이른 새벽 내려갈 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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