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25.쇠날. 눈 쌓인 아침

조회 수 1101 추천 수 0 2011.04.06 23:22:00

 

 

간밤 펑펑 내린 눈은

길섶에 제법 높이 쌓였습니다.

그 위로 바람 맵게 불었지요.

 

고추장집 부엌 수도공사가 끝났습니다.

긴긴 공사 일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공사를 하는 틈틈이 아저씨는 농사도 짓는다시며

며칠 전엔 포도즙을 한 상자 선물로 주셨지요.

“저 타락하지 않을려고 많이 애썼어요.”

아직 미혼이라는, 쉰을 넘은 그는

그렇게 삶을 다듬어내고 있었습니다.

남의 삶이나, 곁에서 고마웠지요.

드나들며 가까이서 지내게 되니

자연히 이곳 속사정들을 보게 됩니다.

일 다니는 사람들이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닌 게지요.

이곳에 한동안 불편을 일으키고 있던 사람 관계 하나를 눈여겨보시고는

저녁 밥상 앞에서 아저씨가 그러셨습니다.

“다 지나갈 거예요.”

그래요, 다 지나갈 겝니다.

사람 때문에 죽고 사람 때문에 사는 거지요.

 

선정샘의 편지가 닿았습니다.

손으로 또박또박 쓴 글씨를 언제적 보았던가요.

“...밖으로는 그만그만하고

안으로는 전투를 거듭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달까 그렇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직 조금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기어서라도 전진하고픈 마음을 다 버리진 않았고

안성빈과 안세현에게 큰 탈이 없으니까요

하고픈 말도 듣고픈 말도

선생님 글에 들어있다 여기고는 꾹꾹 눌러 읽고 마음 정리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또 타인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울컥하였습니다.

사람 때문에 산다니까요, 사람 때문에 죽기도 하지만.

 

계속 촬영을 하자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어제까지 촬영의뢰를 하던 PD는 결국 마음을 접고

다른 곳으로 촬영을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네 번째 PD의 연락입니다.

엄밀하게는 세 번째이지요.

왜냐하면 그 제작사에서 처음 연락을 하고 찾아왔던 이가 바로 그이니까요.

연락해서 거절당하고, 촬영의뢰를 와서 되돌아가고,

다시 촬영을 위해 들이닥쳐 다시 간 바로 그이입니다.

그는 이번 작품이 이 프로그램에서의 마지막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곳을 닮고 싶다했지요.

이젠 제 맘도 무뎌져 촬영을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고,

기락샘을 설득하라 공을 넘겼습니다.

늘 내 뜻대로 다 살다가 처음으로 남편의 반대라는 난관과 만난 건

지난해 간을 기증하겠다고 나섰을 때였습니다.

기증자 가족동의서에 절대 사인 못해준다, 이혼도 불사하겠다,

결국 변죽만 울리고

좋은 일 하고팠던 마음은 죄인이 되었더랬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가 옳았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 잘난 공동체와 새로운 학교 운동을 하는 동안

아내노릇 못했습니다.

이제는 사람노릇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남편 말 좀 들으려 하지요.

 

어머니가 자꾸 무슨 일 없냐 연락이 여러 날이셨습니다.

그 무서운 핏줄의 예감...

여러 달 노심초사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일 있었습니다.

사람 하나 애를 먹이고 있었지요.

사연을 들으신 ‘무식한 울 어머니’ 왈,

“독불 장군 없다. 사람 뒤에 사람 있지.

너들 사정 속속이 다 알고

얕잡아 봐서, 낮춰 봐서, 그러는 거다.

이런 경우, 내 가까운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오래비들한테 말하자.

내 당장 작은 오래비한테 다녀올란다.”

오래비가 둘 있습니다.

큰 오래비는 한 중앙지의 부장이고

작은 오래비는 한 운동 한 사람인데,

성깔과 깡이라는 것이 보통 아니어

우리 온 집안의 해결사 노릇을 한답니다.

워낙 성질이 팍팍하여 모두 그리 좋아하지는 않으면서

그래도 아쉬우면 그에게 기대는 거지요.

“그러지 마셔요. 그리고 작은 형한테는 더욱, 저는 못해요.”

저는 못합니다.

평소에 그리 살갑지도 않으면서 이런 일에 부를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던 서슬로 마침 통화 중이던 타라님께도 고백하기 이릅니다.

균형을 잃었던 겝니다.

사람들은 그 일의 진실이 중요하지 않지요.

다만 시끄럽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에 집중할 것입니다.

일이란 그 시초를 벗어나

화살촉이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리기도 하더란 걸 아실지.

그 속에 고통 받는 사람의 마음은

사실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 없기 쉽습니다.

나빠서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우리의 반응이란 게 그렇단 말이지요.

끄달렸던 시간이 오래니

이제 서서히 균형을 잃고 있네요.

정신 차려야겠습니다.

 

원래는 빈들모임 여는 날입니다.

그런데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내일 들어오기로 합니다.

옥천에서 오는 두 가정, 대구의 한 가정, 그리고 울산의 한 아이.

덕분에 아주 천천히 읊조리듯 손을 놀리는 하루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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