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28.달날. 눈발 잠시

조회 수 1472 추천 수 0 2011.04.06 23:25:07

 

 

아이는 아침부터 목장갑을 끼고 마당을 내려섭니다.

통로 청소부터하고 닭밥을 주고

그리고 소사아저씨가 나무를 정리하고 있는 표고장으로 가

힘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오마이뉴스 메인에 하다 글이 올랐더라.”

십년 만에 들어왔던 한국에서

다시 그 먼 멕시코 칸쿤으로 돌아간 선배에게서

잘 도착했다는 소식과 함께 들어온 메일이었습니다.

아이 곁에 사는 저보다 형이 먼저 알고 알려주었네요.

 

“내 나이 열네 살, 삽질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18일간의 공사 이야기] 겨울이 기니 봄도 길어”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42712&cmpt_cd=M0059

 

공사 경과야 저 역시 아는 일이니 대충 읽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은 되짚어 가게 되데요.

“여기서 보일러 아저씨께 드리는 돈은 서비스업의 서비스 대가가 아닌 것 같다. 보일러가 터져서 어쩔 줄 모르는데 나는 보일러를 못 고친다. 그럴 때 짠하고 나타나서 도와주면 고맙고 감사하고 마음이 놓인다. 돈은 이것의 대가인 것이다. 이건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 사회가 먹고(농사꾼), 고치고(기술자), 치우고(청소노동자)하는 직업들에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다. 이상한 학원 같은 데나 대학 같은 데 몇 천만 원을 쓰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지난번에 홍대 청소노동자 일만 보아도 그렇듯 이런 직업의 사람들한테는 최저임금조차 아까워한다.

 

생각해 보면 대학교수나 학원 강사들은 없어도 사회가 유지될 수 있지만, 농사꾼들이나 기술자들 같은 이들이 없으면 세상은 굴러가지 않는다. 특히 도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먹고 자고 고치고 하는 의식주에 관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마땅하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높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자신을 둘러싼 경험의 세계가 의식을 얼마나 크게 결정하던가요.

 

그리고, 품앗이샘 한 분께 글을 쓰는 밤입니다.

물꼬가 얼마나 많은 손발로 걸어가는 공간입디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분들입디까.

험난한 산 앞에 서 있거나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강물 앞에 서면

바로 그 힘이 지팡이가 되고, 배가 되었던 긴 세월을 살았습니다.

며칠 전 온 그의 편지에 오늘 답장을 씁니다.

 

“사람이 이러면 안 되는데, 어쩌자고 나는 자주 샘을 이리도 기대는지...

홀로 우뚝 잘 서야는데, 어쩌자고 샘한테 이리도 위로를 받는 겐지...

나중에 마음 잘 정리해서 답장 써야지,

그러면 생각은 길고 글은 긴 신세한탄이 되어버리고는 합디다.

해서 오늘 선걸음에 뭐 하드끼 멜 연 김에 내처 몇 자라고 쓰려지요.

덕소리 주소가 적힌 편지는 며칠 전 무사 도착했답니다.

'너무 피곤해서 자학도 힘들구나, 고만허고 그냥 살자...

예나 지금이나 학교는 왜 이렇게 추운지...

열등감은 참 기회가 잡히면 놓치지 않고 마음을 휘젓는 것 같아요...

자기 고민이 제일 크다고 여겨요... 지위고하남녀불문...'

샘의 말, 혹은 글들은 제 마음을 근사하게 언어로 옮겨놓은 것이고는 합니다.

샘은 정말 글 써얄 것 같어요.

그날, 참으로 오랜만에 받아본 직접 쓴 글씨의 편지는

어찌 그리 절 안아내주던지요.

샘이 아셨던 거라,

이러저러 눈치로도 제가 쓴 몇 낱말로도 아셨던 거라,

그래서 그냥 샘 이름의 편지봉투 만으로도 다, 다 온기를 전했던 거라...

...

아무렴요, 일찌기 질긴 세월에 아이들이 위로고 위안이고

그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정토고 극락이고 천국이었지만

자식 있으니 그 크기 더합디다.

아이가 있어 견뎠습니다.

그가 저를 돌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그 아이들한테 더욱 잘해야지,

아이들 하나 하나 다, 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

샘, 샘도 '부디' 건강하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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