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31.나무날. 맑음

조회 수 1115 추천 수 0 2011.04.13 17:20:26

 

몇 날 며칠 적당한 크기로 나무를 자르고 쌓습니다.

오며 가며 하나씩 끌고 왔던 것도 있고,

전정하고 모아놓은 것도 있으며,

여기 저기 일하며 나온 나무들이 흩어져 있다

한 곳으로 옮겨지기도 한 것들입니다.

간장집 뒤란 처마 아래 쌓이는 걸 보며,

날마다 조금씩 하는 일에는

어떤 일도 그 저력을 당해낼 수 없다는 생각했습니다.

 

오래전 펴냈던 시집 하나가 있습니다.

책상 정리를 하다 손에 잡혔네요.

출판할 적 제목 선정에서 마지막까지 후보에 올랐던 하나가

‘문턱에 걸리는 기억’이었습니다.

다른 제목에 밀려 묻히고 말았지만,

자주 이 제목이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문턱...

문짝의 밑이 닿는 문지방의 윗부분을 말합니다.

어떤 결과의 마지막에서 뜻이 꺾이면

정상의 문턱에서 주저앉았다고 하지요.

들어가기가 힘들 때 문턱이 높다 하고,

자주 찾아가거나 드나들 때 쓰는 표현에도 문턱이 있습니다; 문턱이 닳는다.

문턱효과라는 말이 있지요.

넘으려면 어렵지만 그 높이까지 발을 들어 올리면

다음 단계는 아주 쉽게 넘어간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런 문턱은 낮을수록 없을수록 좋다,

사람의 관계도 다르지 않겠다 싶습니다.

 

생각이 자꾸 흩어지면서

때로 불을 댕기지도 않고 물이 끓기를 바라는 일이 있기도 합니다.

전화선도 연결 않고 통화를 시도한다거나

인터넷도 연결시켜놓지 않고 검색어를 치거나

되도록 조건을 만들지 않은 속에 되기를 바라는 일들이 있습니다.

 

지난 해날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고

마음이 쓰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멀리 지나가버린, 그래서 잊히다시피 한 일을 놓고

이제 와서야 뒷북을 치고 있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일이라는 건 늘 한꺼번에 같이 닥치는 속성이 있습니다.

속 시끄러운 일이 오래 지나가더니

또 이런 일이 생겼더란 말이지요.

차분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항의를 해놓고

앞으로 그 일은 또 어떻게 처리해가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그 편에서 전화가 들어왔지요.

사과였습니다.

오히려 과도한 행동을 한 그곳 구성원이 잘못했고,

심지어 그를 벌하고자 한다면 당신을 돕겠다, 했습니다.

“뜻밖의 사과, 고맙습니다.”

상대를 헤아려주고 있음이 더없이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하나를 건너갑니다.

노심초사 마음이 끄달리는 일도 그렇게 지나가리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기리라, 하지요.

또 뜬금없이 요며칠처럼 영화 <대부>의 한 대사 떠오릅디다.

“세상일은 참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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